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更新日: November 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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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타 미니상식 129

시내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후쿠오카번의 어용요 타카토리야키

시내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후쿠오카번의 어용요 타카토리야키

후쿠오카시 사와라구의 타카토리야키 미라쿠가마는 에도시대에 문을 열었으며 올해로 300주년을 맞이하게 된 유서 깊은 가마입니다. 지금은 제15대 카메이 미라쿠 씨가 제16대를 잇게 될 예정인 아들과 함께 도자기를 굽고 있습니다. 타카토리야키는 후쿠오카번의 어용요(御用窯)로 잘 알려져 있는데 지금도 시내에서 도자기를 굽고 있는 곳은 미라쿠가마 뿐입니다.


타카토리야키는 초대 후쿠오카 번주인 쿠로다 나가마사가 한반도에서 도공 팔산(八山)을 데려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의 후쿠오카현 노오가타시 타카토리(鷹取) 산기슭에 1606년 팔산이 첫 가마를 열었습니다. 그는 무사의 신분이 되었으며 이 산 이름을 따서 타카토리(高取)라는 성을 부여받아 타카토리 하치조(高取八蔵)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습니다. 타카토리야키는 이렇게 붙여진 이름으로 이후 후쿠오카번의 어용요로 명맥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긴 역사 속에서 타카토리야키는 이곳저곳으로 이전했고 작풍도 시대와 함께 변화해 왔습니다. 타카토리 산 주변에서 제작되던 초기 타카토리야키의 작풍은 소박한 정취로 이 시대의 것을 후루타카토리라 부릅니다. 2대 번주 타다유키는 타카토리 하치조를 다도로 유명한 코보리 엔슈에게로 보내 엔슈 취향의 다기를 배우도록 했습니다. 이 시대의 타카토리야키는 엔슈타카토리라 불리며 한층 더 세련된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타카토리야키는 엔슈 취향의 도자기를 제작하는 엔슈나나가마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이후 가마는 지금의 후쿠오카현 아사쿠라군 토호무라로 이전했는데 이 시대의 것을 코이시와라타카토리라 부르기도 합니다. 4대 번주 츠나마사 시대 때 타카토리야키는 후쿠오카의 시내로 불려가 가마를 열게 됩니다. 타카토리 하치조의 자손과 제자들이 시내에 이 가마를 열었는데 이때의 흐름을 이어온 것이 지금의 미라쿠가마입니다. 미라쿠가마에는 후루타카토리 등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있으며 도예 교실 등도 개최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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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内に唯一残る福岡藩の御用窯・高取焼

 福岡市早良区にある高取焼味楽窯は、江戸時代に窯が開かれて今年で300年を迎えた伝統ある窯元です。現在は第15代の亀井味楽さんが、第16代を継ぐ予定の息子さんと一緒に焼き物を作り続けています。高取焼は福岡藩の御用窯として知られていますが、現在も市内にあって作陶しているのは味楽窯だけになりました。


 高取焼のルーツは、初代福岡藩主の黒田長政が朝鮮半島から陶工・八山を連れ帰ったことに始まります。1606年に、現在の福岡県直方市の鷹取山の麓に八山が最初の窯を開きました。八山は武士の身分を与えられ、この鷹取山にちなんだ姓「高取」をもらって、高取八蔵と名のるようになります。これが高取焼の名称の由来で、以降、福岡藩の御用窯として続いていくことになります。


 長い歴史の中で、高取焼はあちこちに移転し、その作風も時代とともに変わっていきます。鷹取山の周辺で焼かれていた初期の高取焼は野趣あふれる作風で、この時代のものを「古高取」と呼びます。2代藩主・忠之は、八蔵を茶人として名高い小堀遠州のもとにつかわして、遠州好みの茶器を学ばせます。この時代の高取焼は「遠州高取」と呼ばれ、より洗練された雰囲気が特徴です。高取焼は遠州好みの焼き物をつくる「遠州七窯」のひとつに数え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窯はさらに現在の福岡県朝倉郡東峰村に移転し、この時代のものを「小石原高取」と呼ぶこともあります。4代藩主・綱政の時代に、高取焼は福岡の城下町に呼ばれて市内に窯を開くことになりました。八蔵の子孫や弟子たちが市内に窯を構えますが、この流れを汲むのが現在の味楽窯です。味楽窯には古高取などを展示する美術館があり、陶芸教室なども開催されて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