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UpDate: November 10, 2009

하카타 미니상식 25


사랑스런 하카타 토박이! 가와카미 오토지로!!

사랑스런 하카타 토박이! 가와카미 오토지로!! 이미지

가와카미 오토지로라는 사람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이 사람은 하카타구 쓰마쇼지에서 태어나 전 세계를 활보한 메이지시대(1868~1912)의 연극인입니다. 1864년에 태어나 14살이 되던 해에 하카타항에서 배를 타고 오사카로 건너간 후 걸어서 도쿄에 도착했습니다. 도쿄에서는 1만엔 권 초상화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비서 등을 지내며 정부에 대항하는 자유민권운동에 참가하게 됩니다.

1887년에 들어서면서 자유민권운동에 대한 단속이 엄격해지는 바람에 오토지로는 도쿄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 때에 진보적인 사상가였던 나가에 초민이 오토지로에게 연기를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추천했습니다. 어디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연기를 시작한 그가 내 놓은 상연작 중 하나가 일세를 풍미한 「옷페케페 부시」입니다. 자유민권운동에 관한 내용을 엮어낸 가사가 큰 인기를 끌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무대에서 반정부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그의 연극은 「소시시바이(메이지시대에 청년들이 민권 사상 고취를 위해 시작한 아마추어 연극)」라 불리었습니다. 이를 노래할 때는 진바오리(갑옷 위에 걸쳐 입던 소매가 없는 겉옷)와 하카마(일본 전통 하의)를 입고 머리에는 띠를 두르고 일장기가 그려진 부채를 손에 쥐었다고 합니다.

1891년에 인기절정의 게이샤였던 사다얏코와 결혼하여 그녀와 함께 「가와카미자」를 설립하였고, 사다얏코는 일본의 첫 여배우가 되었습니다. 1899년에는 가와카미자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과 워싱턴, 보스턴 등에서 흥행, 이듬해에는 파리 만국박람회에 초대받아 공연을 열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또 그 이듬해에는 스페인에서 러시아까지 14개국을 순회하였다고 합니다. 게다가 「옷페케페 부시」는 레코드로도 발매되었는데 이가 일본인 최초의 레코딩이었다고 하네요.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와 「햄릿」등을 상연하며 프로모터로서도 성공하였지만 1911년 11월 11일에 무대에서 쓰러져 사망하였습니다. 그가 서거한 11월 11일, 오토지로가 안치된 조텐지에서는 「가와카미 오토지로 회고전」이 열리며 다양한 행사가 개최됩니다.


 홍보과장 사사키 요시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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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すべき博多っこ!川上音二郎!!

 川上音二郎という人のこと、聞いたことありますか?この人、博多区対馬小路に生まれて、世界を駆けめぐった明治の演劇人なのです。幕末の1864年に生まれ、14歳の時(明治11年)に、博多港から船に乗って大阪に渡り、歩いて東京まで行き、福沢諭吉の書生などをやりながら、政府に対抗した自由民権運動に参加するようになります。

 明治20年代になると、自由民権運動の取り締まりが厳しくなって、音二郎は東京から追い出されます。そんなときに、進歩的な思想家だった中江兆民が彼に芝居をやってはどうかと勧めました。じゃあやろうか…と芝居を始め、出し物の一つとして生まれたのが一世を風靡する「オッペケペー節」です。自由民権運動にからませた歌詞が人気となり、大評判となりました。舞台で反政府運動を行っていたので、音二郎の芝居は「壮士芝居」と呼ばれました。歌詞の一部を紹介すると ♪権利、幸福嫌いな人に 自由湯(じゆうとう)をば飲ましたい オッペケペ オッペケペ オッペケペッポ ペッポッポー…これを唄うときは陣羽織を着てハチマキを締め、日の丸の扇を持って袴という格好です。

 明治24年(1891)、売れっ子芸者だった貞奴と結婚、二人で「川上座」を立ち上げて、彼女は日本初の女優となりました。明治32年にはなんと川上座はアメリカに渡り、ニューヨークやワシントン、ボストンなどで興行、翌年にはパリ万博に呼ばれて公演し大人気を博しました。そのまた翌年にはスペインからロシアまで14カ国を回ったといいます。また「オッペケペー節」はレコードとなり、これが日本人最初のレコーディングだったとか。帰国してからは、シェークスピアの「オセロ」や「ハムレット」などを上演し、興行師として成功しますが、明治44年(1911)11月11日に舞台で倒れて亡くなりました。そういう訳で、川上音次郎が亡くなった11月11日、彼のお墓がある承天寺で「川上音二郎忌」があり、ゆかりのイベントが行われます。


  福岡市広報課長 佐々木 喜美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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