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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6호 후쿠오카에서 창조하는 아시아의 예술가들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특집표지

특집 후쿠오카에서 창조하는 아시아의 예술가들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에서는 변화하는 아시아의 「현재」를 살아가는 미술작가가 절실한 메시지를 담아서 만들어 낸 수준 높은 아시아의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현대미술의 전문미술관이라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세계에서 유일한 시설입니다. 후쿠오카・일본과 아시아가 그리고 시민과 미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단순한 만남의 차원을 넘어 서로 이해하고 함께 창작 작업을 해서 발신해 가는 교류형의 미술관을 목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레지던스 사업을 1999년의 개관이래, 매년 실시. 아시아의 미술작가, 연구자, 학예원을 일정 기간 초빙해서 다양한 교류프로그램을 펼치고 있습니다. 후쿠오카에서 체류하면서 작품제작을 한 미술가들을 소개합니다.  아난디타・닷타 [인도] 체류기간:2010년6월10일―8월16일 아웅・먓・테 [미얀마] 체류기간:2010년9월7일―11월15일 김지민 [한국] 체재기간:2010년9월7일―11월15일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아난디타・닷타   인도인 여성 아티스트, 아난디타・닷타 씨는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의 레지던스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 2010년 6월에서 9월까지의 3개월간, 후쿠오카에 체재하면서 제작 및 워크숍드의 프로그램을 실시. 체재제작은 큐슈산업대학 예술학부의 학생들과 함께 점토를 이용한 많은 다수 인원이 참여한 퍼포먼스를 행하고, 그 현장 분위기를 사진과 비디오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워크숍에서는 초・중학생과 인도의 연 및 인도의 왕관을 제작.  ■아티스트:아난디타・닷타 Anindita Dutta 1973년, 프르니아(인도)출생. 인도의 뷔슈바 바라티 대학(타골 국제대학)에서 조각을 배운 후, 아메리카의 퍼듀대학과 아이오와대학에 유학해서 조각과 세라믹을 전공했다. 2010년,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미술작가 초빙사업 참가 아티스트로서 6월10일 부터 후쿠오카에 체류하며 시민과의 공동제작 및 워크숍을 통해서 다채로운 미술교류를 했다.  워크숍 인도의 왕관을 만들자!  미나미후쿠오카 특별 지원 학교를 방문해서 워크숍을 개최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인도의 생활 및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후, 크리슈나 신(神)의 이미지를 보면서 인도의 왕관을 제작. 왕실의 사람들이 몸에 걸치는 사텐천을 바탕으로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부품을 장식해서, 화려한왕관을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왕을 상징하는 공작의 깃털을 장식하면 완성. 즉시 전원이 왕관을 쓰고 인도의 임금이나 왕비가 된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7월26일(월)10:00~11:30 미나미 후쿠오카 특별 지원학교 중학부 2학년 17명 참가    인도의 연을 만들자!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을 견학하러 온 초등학생과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아난디타・닷타 씨로부터 인도의 생활 및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후, 현재도 인도의 농촌지역 축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연만들기에 도전. 연의 모양을 한 종이를 이용해서, 마음에 드는 색의 얇은 종이를 연의 형태로 자른 후, 인도의 연에 그려진 기하학적인 모양 및 자기 취향에 맞는 모양을 잘라서 붙였습니다.  대나무를 구부려서 고정시키고 실로 꿰메는 작업은 어려웠던 같았습니다만, 자원봉사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서 완성했습니다.      7월13일(화)11:00~13:00 후쿠오카시립 타구마 초등학교 5학년 21명 참가 7월24일(토)12:50~15:40 여름방학 어린이 아트 버스투어(카스가시 후레아이 문화센터 주최)초등학교4~6학년 26명 참가

 【퍼포먼스와 제작작품】 흙을 이용한 퍼포먼스   큐슈산교대학(후쿠오카시 히가시구)캠퍼스내의 무대에 도예용의 흙을 가득 발라서 거기를 무대로 2종류의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큐슈산교대학 예술학부의 학생들이 퍼포먼스를 도왔습니다. 아난디타・닷타 씨의 지도를 받고 전신에 진흙을 바른 학생들은 움직이고, 걷는 등 그녀의 작품세계를 같이 만들어 냈습니다.  닷타 씨는 점토를 사용한 퍼포먼스를 근래 수년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원래 저는 조각가입니다만, 지금까지 다양한 소재를 사용해서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마(麻) 등, 자연의 소재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흙으로 만드는 점토에 흥미를 갖고 6년 전에 부분적으로 점토를 신체에 바르고 퍼포먼스를 시작했습니다. 전체를 점토로 뒤덮은 퍼포먼스를 한 것은 프랑스에서 레지던스에 참가했을 때입니다. 그 후로 점토를 사용한 작품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아틀리에 근처에 있는 강의 진흙을 사용.   이번 퍼포먼스처럼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혼자서 3층에 있는 아틀리에까지 양동이로 진흙을 쉴새없이 운반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당시는 젊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며 웃습니다. 「점토를 살아있는 사람의 신체에 바름으로 인해 그 신체 자체가 물질로 변해가며 물질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생명체가 무생물체로 변해간다」라며 점토를 사용하는 이유의 하나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닷타 씨는 인간의 내면에 흥미가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갖고있는 마음의 갈등도 그렇습니다만 누군가가 없어서 외롭다든지 행복하다든지 다양한 감정을 작품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감정이 아닙니다. 다른 누군가의 내면을 자신의 마음속으로 이입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동반하는 것입니다만, 행복함을 표현하는 경우는 자신도 행복한 기분이 든다…양면성이 있습니다」.

 흙을 이용한 퍼포먼스  이번에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남녀 두 명과 미로처럼 자른 부분이 있는 패널의 뒤를 수 명의 남녀가 교차하며 걷는 2개 패턴의 시츄에이션으로 퍼포먼스는 진행되었습니다. 그것을 사진, 동영상 등의 표현수법을 사용해서 작품으로 만듭니다.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실제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저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것에 대해서 일부러 이야기하거나 생각하거나하지 않는듯한 훈련을 우리는 하고있는 듯한 느낌이듭니다 . 그렇지만 사람은 존재한다는것을 표현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녀 자신의 신체에 진흙을 바르고 작품창작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처음으로 타인의 신체를 사용해서 표현하기로. 「자신이 하므로 인해 개인적인 스토리가 되기도 하고 상당히 좁은 견해를 갖게 되는 게 두렵기도 해서 보다 많은 사람을 이 퍼포먼스에 참가시켜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것을 다각도로 찾아 보고자 한다」. 아난디타・닷타 씨는 후쿠오카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제가 점토로 퍼포먼스 할 때에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을 참가해 준 학생들도 느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며 동작 하나하나도 이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퍼포먼스에 협력해 주셔서 기분 좋게 끝낼 수 있었던 것도 크나큰 달성감으로 연결될 것 같습니다」.

 QA 아티스트 아난디타・닷타 Anindita Dutta  ―후쿠오카는 처음입니까?  일본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제작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후쿠오카 이외의 다른 곳에는 유감이지만 못갔습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일본이란 이러한 곳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쿄는 뉴욕같은 느낌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디서든지 도시라는 것은 그러한 것이겠죠. 후쿠오카라는 하나의 도시에 체재하고 있어도 일본이라는 나라의 분위기를 알것 같습니다. 후쿠오카의 사람들은 따뜻하고 자상합니다. 후쿠오카에 오게 된 것은 큰 행운입니다.   ―일본에서의 창작활동은 어떠셨습니까?  음, 뭐라고 할까? 활동하기 편했습니다. 일본은 상대방을 존경하는 마음이라든지, 다소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남을 위해서라는 자상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외로운 기분이 든 적은 없고 제작하는데 있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아서 일도 아주 수월하게 했습니다. 완성도 높은 작품, 좋은 작품이 이번에 후쿠오카에서 만들어 졌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출신대학의 창립자인 라빈도라나토 타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매우 일본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만, 「일본을 배워」라는 말을 하셨어요. 일본은 미에 대해서는 감각이 매우 뛰어나고 확실히 뭐든지 척척 해나가며, 사람으로서 상당히 기품이 있다고. 지금은 타골이 말한 내용을 잘 알 것 같습니다.

 ―타골 씨를 통해서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드디어 일본에 오게되어 기쁩니다. 타골은 수 차례 일본에 왔습니다만 왜 타골이 그렇게도 일본을 좋아하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달성하려고 생각한다면 확실히 신념을 갖고 추진해 가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거나 들은 정보를 통한 인상도 있습니다만 그것과는 다른 실제 자신이 일본에 와서 보고 느낀 점이 있습니다.   일본에는 또 오고싶습니다. 이번에는 제작하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다음에는 여러사람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의 인상은 어떠셨습니까?  많은 지역단체를 참여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눈에 띄는 부분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의 워크숍 등, 교육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지역단체에 대해서 참여를 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술관이 지역인들을 초대해서 미술을 전달한다는 것은 미술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인도에서는 잘 볼수 없는 광경입니다.  전문 지식을 습득함에 있어서 예술 및 미술을 접하거나 책을 통해 얻는 육체적이 아닌 정신적인 영양요소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영양분이 될 지 안될지는 교육을 통하지 않으면 전달되기 힘듭니다. 물질적이 아닌 정신적 또는 지적인 영양 요소는 참교육이 있기에 더욱 살아 숨쉰다고 생각합니다.   도서실도 좋습니다. 좋은 콜렉션입니다. 인도 관련의 책장 등을 보면 마치 인도에 있는 것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자료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작은 것 부터 큰 것까지 다양한 작가라든지 아시아 각국의 도감, 책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후쿠오카에 와서 조금 환대를 받은 느낌이 듭니다.  좋은 스태프들을 만날 수 있었고 좋은 책도 있고 뭐든지 손에 넣을 수 있거나 보거나 하는 것이 가능해서…. 다른 곳에는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 후쿠오카에 초빙해 주기를 바랍니다.      라빈도라나토 타골(1861~1941년)인도의 시인, 사상가. 시성(詩聖)으로서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음. 인도 국가(国歌), 방글라데시 국가의 작사・작곡가이며 타골대학의 설립자. 일본인의 자연을 사랑하는 미의식을 높게 평가하고 5번에 걸쳐 일본을 방문.

 「빛의 감각을 만들어 내다」 아웅 먓테   아시아의 장래 유망한 젊은 아티스트를 초빙해서 시민과의 교류 및 작품제작을 하는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이하 아소비)교류프로그램. 이번에는 미얀마에서 온 아웅 먓테 씨, 한국의 김 지민 씨를 소개합니다. 두 사람은 2010년 9월부터 11월까지 약 70일간,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워크숍 및 작품해설을 하고 후쿠오카를 무대로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아티스트:아웅 먓테 Aung Myat Htay 1973년생. 미얀마의 양곤 거주. 1998년, 양곤의 미술문화대학(조각)졸업.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의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9월7일부터 11월15일까지 체류.  하카타 토우묘우(博多灯明)워칭(watching) 하카타 리버레인 토우묘우(灯明)를 아웅 씨가 프로듀스    하카타의 거리 곳곳이 등불로 휩싸이는 환상적인 이벤트 「하카타 토우묘우(博多灯明)워칭(watching)」. 완전히 가을의 볼거리로서 정착한 이벤트, 개최 장의 하나인 「하카타 리버레인 토우묘우」의 전체 디자인을 아웅 씨가 담당했습니다.    야간 점등을 위해서 낮부터 자원봉사자, 지역주민의 손에 의해서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종이 봉투에 흙과 양초를 넣고 약 3,000개의 등불을 만들어서 강가에 있는 하카타 리버레인 일대에 줄지어 놓습니다. 어린이부터 중학생, 그 부모와 고령자까지 세대를 초월해서 많은 사람이 땀을 흘렸습니다.       밤 6시에 점등, 하카타 리버레인과 호텔 오쿠라 사이에 있는 광장에 공작새와 하늘을 나는 큰 지상 그림이 떠오르면 여기저기서 「와~예쁘다」라고 환성이. 후쿠오카시내의 초등학생이 워크숍에서 만든 회전등롱(回り灯籠)및 호텔 오쿠라의 벽에 아웅 씨의 키리에(切り絵. 종이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오려 대지에 붙여서 만든 그림.)이 투영되어 평소와 다른 오묘하고 신비스런 분위기에 많은 관람객이 넋을 잃고 있었습니다.    양초의 등불은 3시간 만에 꺼졌습니다만, 그냥 등불을 구경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스태프, 주민, 자원봉사자, 아티스트 등, 많은 사람이 참가해서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이벤트의 취지를 느꼈습니다.   「미얀마에도 10월에 등불을 이용한 축제가 있습니다. 하카다의 축제에 자신이 참여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협력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아웅 씨도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워크숍과 퍼포먼스】 예술을 통해서  꿈과 평화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11월3일(경축일) 문화의 날, 이날은 아지비에 체류하고 있는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오픈 스튜디오」가 개최되었습니다.    아웅 씨는 누구나 자유롭게 견학할 수 있는 오픈 스튜디오에서 워크숍「이야기」를 개최했습니다. 참가한 것은 코가 시립 코가 중학교 미술부 16명. 사람모양의 큰 종이를 잘라내서 빛을 투영시키는 작품을 만듭니다. 주제는 「꿈」, 네 그룹으로 나눠서 의견을 주고받은 후, 디자인을 결정했습니다. 처음에는 잡담하면서 자기 페이스로 작업을 하던 학생도 커터로 잘라내고 셀로판을 붙이는 작업에 들어가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성한 작품이 빛에 비치니 멋진 예술작품으로 금방 변해서 학생들이 기뻐하는 것 같았어요.       「세계가 평화스러워지도록」,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고싶다」 등, 그룹별로 꿈과 동경에 대해서 발표, 일본과 미얀마의 국기를 넣어서 만국기를 디자인한 그룹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꿈과 희망이 가득 차 있어 마음이 설레입니다」라고 아웅 씨는 말합니다.   이날 오후, 아웅 씨는 아지비를 벗어나 레이센(冷泉)공원의 잔디밭에서  퍼포먼스「Home Sick and Sick Home」를 열었습니다. 전신으로 표현하는 힘이 넘치는 퍼포먼스에 감상하고 있던 코가 중학교의 학생들도 깜작 놀람! 미얀마라는 나라와 현대미술을 몸소 느낀 하루였습니다.

 【제작작품】빛을 느끼는 설치예술  아티스트 체재 중의 활동을 발표하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의 성과전」에서 아웅 씨는 두 개의 인스톨레이션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인스톨레이션이란 오브제 및 영상, 소리 등을 이용해서 공간 전체를 체험하는 예술을 말한다. 어두운 전시장에 제작작품의 빛이 흔들거려 신비한 분위기에 휩싸입니다.   『이야기I-등롱(灯籠)』은 일본인에게도 친숙한 회전등롱에 부처의 탄생 등 불교에 기반을 둔 디자인이 그려져 있습니다. 3면의 벽에도 등롱의 영상이 비쳐 마치 자신이 이야기 속에서 헤매고 있는 듯한 감각입니다.  『이야기II-부처의 생애』는 20장의 사람 모양에 다양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작품. 전통적인 디자인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빛과 소리를 이용한 새로운 표현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저의 모든 작품의 기본이 되고 있는 것은 빛의 감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빛과 그림자, 희망의 빛 등・・・보는 사람이 각자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아웅 씨는 말한다.   Q-교류 프로그램을 마친 소감을 한 말씀 부탁합니다.    후쿠오카에서 보낸 날들은 꿈과 같았고 마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들의 미소, 꽃과 나무 등의 식물, 미술관의 전시작품, 수공예품 등에서 일본도 미얀마와 같은 아시아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에는 여러 국가가 있습니다만, 저는 큰 하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보다 서로 잘 알지 못하면 안 됩니다.

 「옷의 브랜드 태그가 예술작품으로 변신 !」김 지민  ■아티스트:김 지민  Kim Ji-Min 1975년생. 한국 서울 거주. 2005년, 서울대학교(조각전공)졸업. 2007년, 영국의 윔블던 미술대학(조각전공)졸업. 2010년,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의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 아티스트로서 9월7일부터 11월15일까지 후쿠오카에 체류.  제작작품 『팬―신사(神社)의 기억』The Fan- the memory of shrine 신사와 아트의 만남!?   「일본의 전통적인 건축물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라는 지민 씨의 요청으로 후쿠오카현 후쿠츠시의 미야지 신사가 제작장소로 결정되었습니다. 옷에 붙어 있는 패션브랜드의 태그 수 천장을 신사의 누문(楼門)에 원형으로 붙이고 한 장 씩 떼는 과정을 디지털카메라로 기록, 그것을 편집해서 신사에 화려한 색상의 모양이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영상작품을 제작했습니다.     돌연 신사에 등장한 이상한 형태의 크고 작은 물방울 모양에 참배객은 「무언가 주문의 의미가 있습니까?」 라고 흥미진진.「전통적인 것에 새로운 태그를 붙이므로 인해서 오래된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덮여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상은 얼떳보면 디지털로 보입니다만, 사실은 모두 인간의 손으로 만든 아날로그 작품입니다.」    지민 씨는 「저의 작품은 옷의 태그를 사용해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Fan에는 두 개의 의미가 있으며, 하나는 선풍기 등의 날개를 의미하는 팬. 무엇이든지 멀리 돌고 있는 현대사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아이돌 등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팬으로 소비에 열광하는 사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카와바타 상점가는 소비의 무대이므로 작품의 테마에 안성맞춤입니다.」지민 씨의 「Fan」은 카와바타 상점가에 어떤 바람을 불어넣었을까요?

 The Fan 3.6  카와바타 상점가에 의문의 예술작품이!  아지비의 바로 앞에 있는 카와바타 상점가의 입구에, 11월3일~30일까지 지민 씨의 작품「The Fan 3.6」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나타났다, 빨려들어갈 듯한 거대하고 둥근 물체에 아케이드의 행인들은 이상하다는 듯이 위를 올려다봅니다. 보신 분도 계시지 않을까요?   직경 3.6m의 거대한 작품은 양복의 태그 수 천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인내력이 요구되는 작업을 뒤에서 도와준 아지비의 자원봉사 스태프. 서투른 영어, 일본어, 몸짓으로 의사전달을 하면서 길이 5cm 정도의 작은 태그를 하나하나 손바느질로 꿰매었습니다. 「섬세한 작업이어서 눈과 허리가 아팠지만(웃음), 완성했을 때는 아티스트와 함께 달성감을 느낄 수 있어서 기뻤다」라고 봉사자가 소감을 말합니다.     지민 씨는 「저의 작품은 옷의 태그를 사용해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Fan에는 두 개의 의미가 있으며, 하나는 선풍기 등의 날개를 의미하는 팬. 무엇이든지 멀리 돌고 있는 현대사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아이돌 등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팬으로 소비에 열광하는 사회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카와바타 상점가는 소비의 무대이므로 작품의 테마에 안성맞춤입니다.」지민 씨의 「Fan」은 카와바타 상점가에 어떤 바람을 불어넣었을까요?

 【워크숍】스티커로 그리는 바닷속 세계  아지비에서는 「아시아와 아트를 만나다.」 교류형 미술관으로서 학교 대상의 체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지민 씨는 체재 중에 4개의 초등학교와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우선은 작품을 보면서 이야기를 들은 후, 어린이들은 옷의 브랜드 태그를 복사하고 스티커를 사용해서 지민 씨와 같은 수법으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테마는 「바닷속 세계」. 그룹으로 나눠서 바다의 생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후, 색이 다른 스티커를 조합해서 고래, 문어 등의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완성한 작품은 그룹별로 발표하고 모두 다 함께 감상했습니다.      Q-교류 프로그램을 마친 소감을 한 말씀 부탁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제작에 집중한 70일간이었습니다. 이것도 아지비의 스태프, 봉사자가 지원을 해준 덕분입니다. 지금까지도 영국, 뉴질랜드에서 동일한 「Fan」시리즈를 만들어 왔습니다만, 이번은 견고한 작품이 아니라 풀어나가는 자유로운 발상으로 작품을 구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여성 자원봉사자분들과 계속해서 바느질했기 때문에 자신도 여성의 일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웃음). 감사합니다.

 특별 칼럼  큐슈에서 아시아로 「아시아문화를 향해~전력질주하는 지방도시 후쿠오카~」후쿠오카시 문화진흥과 주사  영화제 사무국 야마모토 코우헤이 아시아따위 모른다!    어떤 연유로 나 같은 지방공무원이 잘난 체 글을 쓰고 있는가? 사실은 이러한 점에서도 큐슈・아시아의 강한 연결고리가 숨어 있다. 사적인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원래 평범한 사무 일을 하려고 후쿠오카시청에 입사했으나 수차례의 이동 탓에 여러모로 변하게 됐다.   지금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아시아 미술관 개설담당」. 아시아에도 미술에도 아무런 연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초적인 영어능력도 갖추지 못한 내가 갑자기 해외 미술품 및 아티스트의 조사업무를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망설임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 후로는 아시아미술관 학예과에서, 아시아에서 오는 아티스트 및 연구자의 지원 및 프로그램의 기획 등, 시청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참여해 온 부서 및 일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 트리엔나레」, 「후쿠오카 아시안 먼스」, 「아시아 태평양 페스티벌」, 「후쿠오카 아시아 연구소」, 「아시아 태평양 도시서밋」 그리고 현재의「아시아 포커스・후쿠오카 국제영화제」입니다. 이게 전부 시청의 업무라니, 후쿠오카시는 「뭐 어떻게 된 것 아냐?」라는 말을 들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일회성의 이벤트는 전혀 없고, 이 모두다 후쿠오카시가 주최한 조직 및 사업으로써 대부분이 벌써 20주년을 맞이하며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은 내가 아시아에 대해서 광적인 사람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국제적인 사람도 아니고, 후쿠오카시가 이렇게 많은 아시아 관련조직・사업, 그것도 각 사업에 상당한 경비가 드는 것을 장기간에 걸쳐서 계속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이 밖에도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상」 및 「아시아 태평양 어린이 회의」 등, 후쿠오카시가 관여하는 아시아 관련사업은 어느 것이나 규모가 크고 압도적이다. 그냥 생각하면 지금의 시국에 이렇게 많은 경비가 드는 국제업무를 계승한다는 것은 지방에서는 어렵다. 그리고 이 아시아 정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시의 직원임에도 뭔가 아시아에 관해서 통달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나같이 아무 쓸모 없는 인재가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정말로 쓸모있는 아시아에 통달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큐슈・후쿠오카와 아시아의 밀월관계!?    그럼 어째서 이런 것이 버젓이 통할 수 있는 것일까. 조금 전에 언급한 후쿠오카의 아시아 사업은 최근 중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시작된 것과 같은 서둘러서 만든 것은 전혀 없다.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은 1989년에 개최해서 대성공을 거둔 지방박람회 「아시아 태평양 박람회 「요카토피아」였지만 그보다 10년 전에는 「아시아 미술전」이 시작되었다.    사실은 근대에 있어서 후쿠오카의 아시아에 대한 목표는 1924년에 일본에서 중국의 혁명가 쑨원이 개최한 강연 「대아시아주의」가 단서라는 견해도 있다. 조금 살펴보기로 하자. 대아시아주의를 기초로한 「우리가 대아시아 주의를 설득해서 아시아 민족의 지위를 회복하려 한다면 오직 인의도덕(仁義道徳)을 기초로 한 각 지의 민족을 연합하면 아시아 전체의 민족이 놀랄만한 세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중략) 압박을 받고 있는 우리 아시아 민족이 어떻게 하면 유럽의 강성민족에게 대항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피압박민족은 한편으로 구미(欧美)의 패도(覇道)문화를 수용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의 왕도(王道)문화의 본질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본이 세계문화의 나아갈 길에 대해서 서양 패도의 사냥개가 될지, 아니면 동양 왕도의 무인이 될 것인지, 그것은 일본국민의 세심한 고려(考慮)와 신중한 선택에 달렸다.」(1966년「쑨원 선집」에서 발췌)   이것만 보면, 지금 와서 전쟁으로 번지는, 좀 편협한 사상으로 받아들여져도 어쩔 수 없다. (실제 문제로서 열강의 제국주의가 정의를 구실로 일으키는 전쟁은, 지금껏 칭찬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도 일리 있는 것 같다.) 사실은 이 구상은 국권확장 주의로 정책을 펼치려고 한 일본의「아시아주의」 자를 충고하려는 의도가 있다.       쑨원과 깊이 연관이 있었던 것이 후쿠오카의 토야마 미츠루(頭山満)로 이 강연의 직전에도 쑨원과 만남을 가졌었다. 토야마는 우익의 창시자로 인정받을 정도로 국수주의자이지만 국가에 대해서도 발언력이 있는 실력자였다. 그리고 그는 쑨원의 「대아시아주의」에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과연 그의 본심은 태평양전쟁을 지지하려고 한 것이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평화를 추구하고자 했는지, 현재로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그가 속한 단체는 대아시아주의를 모체로 하는 현지 신문사의 설립 및 후쿠오카시장을 비롯한 정치가의 배출 등, 제고장뿐만 아니라 일본의 정・재계에도 오랫동안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후쿠오카에서는 잘 알려진 일이다. 그리고 현재, 후쿠오카의 아시아주의는 과거에 길러진 것에서 문화적・평화적 요소만을 추출한 것으로 생각하여 이 의미로 쑨원의 계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큐슈와 아시아의 관계를 살펴보면 아시아의 귀빈이 일본에 방문했을 때의 영빈관「코로칸(鴻臚館)」 의 시대(나라 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역시 아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것은 역사가 흘러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아주 옛날부터 교류하기에는 좋지만 겡코(元寇. 원나라가 서기 1274년,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의 대마도와 하카다 부근을 습격한 사변)와 같이 전쟁할 때는 습격당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큐슈・후쿠오카에는 일본의 다른 지방이상으로 아시아와의 교류가 오래되고 깊은 역사가 새겨져 있는 것이 당연하고 그 지역 및 사람들 속에 DNA처럼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후쿠오카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큐슈에는 예를 들면 카고시마의 「카고시마 아시아 청소년 예술제」 등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사업이 많고, 자매도시도 전국의 다른 지방과 비교하면 아시아 도시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아시아포커스・ 후쿠오카 국제영화제의 놀라움!  사실은 앞서 소개한 아시아 관련사업은 세계 및 세계 최고 등, 세계에 자랑할 만한 수준이 되는 것이 몇 개 있다. 지면의 형편상, 이번에는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아시아 포커스・후쿠오카 국제영화제」를 꼭 소개하고 싶다.  영화의 거대냉장고?  그건 그렇고 도쿄 및 부산 등, 후쿠오카를 훨씬 뛰어넘는 거대 국제영화제는 몇 개 있지만, 영화제 출품작의 필름을 미술품처럼, 혹은 그 이상의 조건으로 취급하는 곳은 그다지 없을 것 같다.    아시아포커스는 후쿠오카시 종합도서관의 필름 수집・보존・공개기능과 연계하고 있어서 영화제 출품작은 기본적으로 뉴프린트 (마스터의 네가 필름으로부터 포지티브로 갓 만들어 낸 필름)에 일본어 ・영어자막을 단 상태로 필름 전용의 (온도 약 5℃로 유지된) 냉장고에 반영구적으로 보존된다. 여기에는 2만 롤이나 되는 필름을 수장할 수 있다. 게다가 수백 편의 귀중한 아시아 영화의 필름이 보관돼 있고 그중에는 세계에서 여기밖에 없는 정말 귀중한 한 편의 영화도 발견되어 아시아 각 국의 영화감독이 감사를 표하고 자신들의 작품을 수장해 주기를 희망하는 곳이 되었다. (여기에는 일본의 작품도 수 많이 수장되어 있으며 예를 들면 타카쿠라 켄(高倉健)씨의 개인 소장 필름이 기탁되어 있고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의 셀화 등도 있다.)        필름은 아주 델리케이트한 소모품이어서 상온에서는 금방 손상・열화 되므로 전문가가 엄중히 관리하는 엄중히 관리하는 수장고의 역할은 세계적인 문화재 보존의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경제 ・사회정세가 불안정하고 기후조건도 열악한 아시아의 각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설이다. 일본에서는 도쿄 국립 근대미술관 필름센터 다음으로 후쿠오카의 이곳만이 국제 필름 어카이브 연맹의 회원이 되었고 아시아 필름 국립 국회도서관이라 불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아시아 영화의 수집을 통한 작품의 확보 수는 일본 최고이다. 이 하나만으로도 일개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상당히 놀랄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마케팅 아이즈 (Marketing eyes)    뭔가 좀 자랑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실태는 그렇지 않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는 아시아포커스는 꽤 힘든 면이 있다. 요즘 기업에 있어서는 글로벌화가 진행되어 국제경쟁을 하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 되는 등, 일본기업도 고생을 강요당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지방에까지 그 여파가 몰아치고 있다. 이 영화제도 경쟁상대가 적고 일본이 부유했던 시절은, 주로 「시민에게 있어서 아시아의 질 높은 문화를 소개하는 영화제」이면 괜찮았던 것이 최근에는 예를 들면 이웃인 부산국제영화제 등의 신흥세력이 저변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부산과 비교되기도 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현저하게 뒤떨어진다. 왜냐하면, 부산국제영화제는 예산규모로도 10배 정도, 한국이 국가정책으로서 후원해 주는 영화제이며, 게다가 세계에서 첫 공개작품을 60편 이상 공개하기 때문이다. (아시아포커스에서는 공식 초대작품의 수도 20편 정도이며 세계 첫 공개작품은 별로 없다.)    부산에서는 이미 영화를 도시의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대학을 비롯한 교육기관으로부터 영화관, 그리고 촬영기재 및 스튜디오 등, 종합적인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그 중추적인 사업이고 영화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마켓의 역할도 규모가 커져서 언제부터인지 아시아에서는 최대규모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렇다. 영화제도 마치 일본기업과 한국 삼성의 경쟁과 같은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인은 당연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보다 큰 마켓을 목표로 두게 된다. 그 결과, 상업적으로 성공할 것 같은 영화 및 화제작은 될 수 있는 한 큰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하고 싶다는 생각은 당연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영화를 확보하기 힘들어 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 같은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승부를 걸 수가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해결책은 마련하지 못했지만, 먼저 거론한 도서관과의 연계는 큰 강점이다. 또한, 작품선정에 있어서는 상업목적으로는 선정하기 힘들다. 높은 질을 추구하는 것은 그 작품을 반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 하나가 영화후진국에서 큰 영화제에는 소개되지 않는 숨겨진 보물 같은 좋은 작품을 발굴하는 것. 이러한 작품의 선정 및 기획의 책임자가 하리키 야스히로 (梁木靖弘) 디렉터이다. 하리키 디렉터가 세계 각국의 영화제를 방문해서 선정한 작품은 여기에서밖에 볼 수 없는 최고 수준의 영화뿐이다. 영화제에만도 매년 2만 명 정도의 시민이 참가하고 있지만, 미술, 문화상, 연극,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아시아문화에 친숙한 후쿠오카 시민은 일본에서 가장 아시아를 이해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어쨌든 앞으로 지방 자치단체는 모든 사업이 구조조정이나 도시 간 경쟁 등 내외의 경쟁에 노출되기 때문에 마케팅의 관점으로부터 사업을 잘 구성해서 추진하지 않으면, 존속마저도 힘든 상황이 될 것이다.      올해의 아시아포커스・후쿠오카 국제영화제의 메이저 급 영화          아시아포커스 첫 등장, 아마 일본에서도 거의 공개된 적이 없는 아젤바이잔의 영화를 소개하기로 하자. 사실은 아젤바이잔은 이번이 첫 등장이어서 아젤바이잔 대사관에 협력의뢰를 하러 갔더니 너무나도 호의적으로 반겨주었다. 뭐니뭐니해도 아젤바이잔어의 영화이므로 일본어자막을 만드는 것만 해도 힘든 작업이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아젤바이잔 예술대학의 영화연구자로부터 여비를 개인 부담 해서라도 꼭 일본에 와서 강의하고 싶다는 요청이 와서 초청했다. 그들에게는 대단히 진귀한 기회일 것이다. 아시아포커스는 아젤바이잔과 일본의 흔치 않은 만남의 장이 되었다.   그건 그렇고, 2008년의 아젤바이잔 영화「환상의 성채」는 아젤바이잔의 산촌에 영화 촬영팀이 찾아오는 신으로 시작된다. 마을에는 영화촬영의 무대세트인 요새가 세워져 거기를 무대로 젊은이들의 연애극이 마치 극 중 극과 같이 펼쳐지는데, 서서히 민족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아름다운 자연 속, 현실과 환상이 복잡하게 뒤얽힌 드라마틱한 서사시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후아의 아시안여행 이렇게 가깝다! 가볍게 떠나는 섬 여행 코스 후쿠오카시 니시구・노코노시마(能古島)  후-아입니다. 이번에는 배를 타고 하카다만에 있는 리조트 섬・노코노시마에 갔다 왔어요. 배가 출발하자 후쿠오카 야후 돔 및 후쿠오카 타워가 점점 작아 보여서 여행기를 잘 적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섬을 거닐면 물고기를 노리는 고양이, 길가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주머니들을 우연히 만나는 등, 섬 특유의 넉넉한 분위기를 느낀다. 겨우 10분도 안 걸려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별천지로! 몇 번이고 가고 싶어 졌다.   1.노코노시장 페리가 도착한 선착장 옆에 있는 특산품 판매소. 관광안내소도 겸비하고 있으므로 지도를 받거나 관광에 대해 상담을 받을 수 있어요. 노코노 우동, 귤, 제철의 야채, 건어물 등 특산품도 많이 있어요. 제철의 야채, 건어물 등 특산품도 많이 있어요. 노코노 명물「노코 버그」의 가게도 있어요. 후-아의 관심을 끈 것은 이 고장에서 만든 노코노시마 사이다 (210엔). 노코노시마에 건너가는 페리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라벨이 향수를 자극하고, 선물로도 좋을 것 같아요!   2.시라히게 신사(白鬚神社) 천천히 거닐고 있는데 재미있는 이름의 신사를 발견. 흰 수염의 할아버지가 신(神)인가. 물어보니 전국에는 300개 이상의 시라히게 신사(白鬚神社)가 있으며 그 이름으로부터 무병장수의 신으로서 모셔지고 있다고 해요.섬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로서, 매년 10월에 열리는 축제「오쿤치」가 유명, 후쿠오카시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하네요. 어쩐지 뭔가 득을 볼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진지한 마음으로 참배하고 왔어요.

  3 노코노시마 전망대  노코노시마에서 가장 높고(표고195m)전망이 좋은 곳. 니시테츠버스「전망대 입구」버스정류장에서 숨을 헐떡이며 산길을 오르기를 10분, 드디어 전망대에 도착! 확- 시야가 열려 바다에 둘러싸인 360도 파노라마의 대절경에 피로도 말끔히 사라졌어요. 바다 건너편에는 맨해튼과 같은(!?)도시의 빌딩이 우뚝 솟아있는 후쿠오카 시내, 뒤로 한 바퀴 돌아서 보면 시카노시마(志賀島), 겐카이지마(玄界島)・・・.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4 사색(思索)의 숲  전망대에서 귤밭으로 걸어가면 「사색의 숲」이라는 이름의 숲이 있어요. 음, 후-아도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 사색해 볼까나? 산책길로 정비된 숲을 가로질러 가보니 뭔가 2개의 큰 오브제「이자나기이시와 이자나미이시」이 있어요. 해설에는 「고사기(古事記)에 나오는 최초로 만들어진 섬, 오노코로에 노코노시마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라고 적혀 있어요! 어쩐지 주변은 신비스러운 분위기, 강력히 추천할 만한 곳을 발견했어요!    5.노코노시마 아일랜드 파크  노코노시마는 꽃의 섬, 사계절의 꽃을 즐길 수 있는 아일랜드 파크.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는 코스모스, 그리고 겨울에는 수선화・・・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꽃밭은 정말 최고예요! 넓은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먹고, 낮잠을 자는 등, 천천히 넉넉한 시간을 보내는 게 후-아의 라이프 스타일. 페리 선착장에서 니시테츠 버스로 10분, 도보 약 45분. 입장료는 성인 1,000엔, 초・중학생 500엔, 3세 이상 300엔 (12월~2월 말은 성인 500엔、초・중학생 300엔、3세 이상 100엔!)

훌쩍 떠나는 시간여행  2,000년의 역사를 가진 후쿠오카는 대한해협에 접해있어 예부터 외국으로 나가는 현관으로서 아시아의 사람들과 교류해 왔습니다. 거리를 걸으면 옛 시대의 기억이 남은 장소를 만나게 됩니다. 이 칼럼에서는 그런 장소를 소개. 후쿠오카를 산책하다가 발견하면  이 도시가 겪어온 지나가 버린 날들로 시간여행을 해 보십시오.    여덟 번째 이야기 돈페키로우(呑碧楼)  ~중세, 하카다의 해변에 있었던 장엄하고 화려한 코우로우(高桜. 높이 지은 누각)~     중세, 멀리 중국 및 조선에도 그 명성을 떨친 돈페키로우라는 장엄하고 화려한 삼 층 코우로우가 오키노하마(息浜)의 묘라쿠지(妙楽寺)에 세워졌습니다. 오키노하마가 있었던 곳은 지금의 코몬도마치(古門戸町)근처. 묘라쿠지의 창건은 1316년(正和5년). 하카다인들이 오키노하마에 암자를 지어 선승(禅僧)・게츠도우소우기(月堂宗規)를 맞이한 것이 시초였습니다. 칠당가람(七堂伽藍『불교』 절의 중요한 일곱 가지 건물.)이 제대로 갖춰진 것은 1346년(貞和2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전국시대(戦国時代)에 화재로 타버려 쿠로다 나가마사(黒田長政)에 의해 지금의 고쿠쇼마치(御供所町)로 옮겨졌습니다.      묘라쿠지가 지어진 장소는 겐코우보우루이(元寇防塁)의 석탑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세키조우잔(石城山)이라는 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전성기에는 묘라쿠지와 관련있는 절이 29개나 있었던 대사원(大寺院)이었습니다. 명(明)나라 때에는 켄민센(遣明船)의 숙소로서 지금으로 말하자면 외무성의 출장소 같은 역할을 했었습니다.돈페키로우는 게츠도우(月堂)의 출중한 제자로서 하나조노 천황(花園天皇)의 아들이라고 전해지는 무가쇼고(無我省吾)가 게츠도우를 위해서 세운 코우로우. 하카다만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조건을 갖춘 곳에 있었으며 극히 드문 건조물이었던 같습니다. 해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중세의 바다를 항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지켜봐 왔을 겁니다.      원(元)의 승려・료우안세이요쿠(了庵清欲)는 일본에 온 승려나 원에 건너간 무가쇼고(無我省吾)등으로 부터 돈베키로우의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겠지요. 먼 이국(異国)에서 돈베키로우에서 바라본 정경을 상상하며 한시에 읊고 있습니다.  「돈페키로우의 난간에 기대어, 광활한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니, 용은 검은 구름과 함께 주거지로 돌아가고, 석양은 가라앉고 있노라」사라져버린 돈페키로우는 바다 건너에 사는 이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낭만으로 가득 찬 코우로우였습니다.      ※참고문헌/『세키조우이호우』 세키조우잔묘라쿠지 1991년(平成3년)발행/『되살아나는 중세의 하카다』아사히신문 후쿠오카본부 편 아시쇼우보 1990년(平成2년)발행

ASIANTOPICS vol.8 아지비 전람회 르포 vol.4   현대중국의 미술 기간:2010년11월13일(토)~2010년1월10일(경축일) 개최장: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7층 기획 갤러리     중국의 저력을 느끼는 작품들!  중국정부가 5년에 한 번, 주최하고 있는 중국 최대규모의 공모전 「전국미술전」. 2009년에 열린 「제11회전」의 수상작품 500점 중에서 엄선된 중국화, 유채화, 조각 등 81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북경 올림픽 및 상해 만국박람회 등,  큰 이벤트를 개최하고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로부터 중국의 「현재」를 느껴보자.    개최 장에 들어가면 우선 중국의 젊은이들을 소재로 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엔스핑(顔蘇平)의 『3G 생활』에 그려져 있는 것은 헤드폰을 끼고 눈을 감은 소녀. 바깥세상에서 격리된 상태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편리함을 가져다줌과 동시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과 사람의 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작자는 이러한 현상에 더욱 민감해지도록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서도 작품 속의 소녀와 닮은 젊은이, 전차 안 등에서 볼 수 있지요. 나라는 달라도 문제는 같습니다.    계속해서 젊은이 시리즈. 리제핑(李節平)의 『젊은 부부』입니다. 작자는 지방에서 도시로 나온 맞벌이 노동자 부부를 모델로 소박하고 순진한 모습 및 희망 넘치는 미래를 그려냈다고 말합니다. 지역의 격차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도시로 나온 노동자들은 과혹한 대우를 받으며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위의 헤드폰을 한 소녀와 비교했을 때, 부부의 희망을 느끼게 하는 힘이 강한 눈빛이 인상적입니다.    지방의 생활이 그려진 작품, 왕웨이 안(王維安)의 『음력 섣달』입니다. 농민들이 신년 맞이 준비를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정월에 필요한 것을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하는 등, 분주하고 상쾌한 기분이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작자는 산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치를 통해서 중국 농민의 밝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Editor s notes   역시 중국, 넓다! 젊은이 및 도시로 상징되는 신시대, 걸어온 역사, 지방의 생활, 다양한 민족, 아름다운 자연・・・다양한 테마의 작품이 있습니다. 아티스트들이 전하는 다양한 메시지에 의해서 중국에 대한 이미지의 폭이 넓어집니다.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 홈페이지에 접속 ]  현대중국의 미술 관람료 800엔, 고등학생・대학생 500엔, 중학생 이하 무료 개관시간: 오전 10시 ~오후 8시(입장은 오후 7시30분까지) 휴관일:수요일

ASIAN TAKARABAKO 아시안 보물 상자 아시아 맛 기행 vol.4 닭이 한 마리 통째로! 닭 한마리   추운 날은 역시 전골요리. 한국에는 일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전골요리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사람이라도 한번 맛보면 그 맛에 반해버리는 것이 닭 한마리. 닭 한마리란 이름 그대로 신선한 영계 한 마리를 통째로 천천히 삶은 요리입니다. 닭의 본 맛이 진하게 우러난 국물은 일품!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고 싶었습니다. 하카다의 명물인 미즈타키(水炊き)와 조금 비슷한 느낌인 것 같아요.   서울의 동대문시장의 옆, 깊숙하고 좁은 골목길에 닭 한마리 전문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통칭, 닭한마리 골목. 인기 점은 낮이나 밤이나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가득 차 있어요. 일본어 안내가 있는 가게도 간간이 보입니다. 일본인 관광객에게도 인기 있는 한국요리입니다.    가게에 들어가면 말할 것도 없이 은색의 큰 냄비에 닭이 드러누운 채로 나오므로 어떻게 먹는지 약간 망설여집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가위로 먹기 좋은 크기로 닭을 싹둑싹둑 잘라봐요. 점원이 잘라주는 가게도 있습니다.    요리가 완성될 때까지 양념장을 만들고 준비! 고추페이스트의 매운 양념, 간장, 식초, 마스타드를 자기 취향에 맞춰 조합합니다. 끓어오르면 우선 국물을 먹습니다. 닭의 맛이 잘 우러난 농후한 맛에 스푼이 멈추지 않습니다. 이어서 닭고기를 양념장에 찍어서 한입에 쏙. 탄력있고 부드러우며 깔끔해서 맛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요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칼국수 (한국의 수타우동). 닭 맛이 스며든 칼국수는 배가 부른데도 이상하게 후루룩 잘 넘어간다. 한국인 손님의 테이블을 보니 냄비에 김치 및 양념을 넣어서 새빨갛게 국물을 만들어 먹고 있는 그룹이 대부분. 역시 고추를 좋아하는 나라. 매운 것을 좋아하는 분은 도전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한국에서는 하나의 냄비나 접시에 담긴 음식을 나눠 먹는 습관을 중요시하고 있으며, 친목을 도모하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 수다를 떨며 먹고 싶은 닭 한마리, 서울을 방문하면 꼭 드셔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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