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 매거진

특집4호 아시아의 필름센터를 목표로! 후쿠오카시 종합도서관・필름 어카이브

특집표지

신착정보:아시아의 필름센터를 목표로! 후쿠오카시 종합도서관・필름 어카이브  영화를 문화자산으로서 보존하기 위한 필름 어카이브. 많은 나라 에서 자국 및 타국의 영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서 국영의 필름 어카이브를 설립하고 있습니다. 국제 필름어카이브 연맹(FIAF)에 가맹하고 있는 것은 일본에서는 도쿄 국립 근대미술관 필름센터와 후쿠오카시 종합도서관뿐. 필름 어카이브는 아시아영화의 보존장소 로서는 유수의 시설입니다. 아시아 포커스・후쿠오카 국제영화제의 개최와 함께 아시아 각국・지역의 영화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후쿠 오카. 미래에 남길 유산을 위한 활동을 보도록 합시다.  영화를 문화재로서 보존한다 되살아나는 잃어버린 영화들 영화와 관객을 연결하기 위한 기술

영화를 문화재로서 보존한다 후쿠오카시 필름 어카이브의 실력  후쿠오카시 필름 어카이브란?  후쿠오카시 종합도서관・필름 어카이브에서는 「아시아포커스 ・후쿠오카 국제영화제」의 상영작품을 비롯한 진귀한 아시아 영화의 대표작, 고전적 명작, 일본영화, 기록영화, 애니메이션, 실험영화, 후쿠오카와 관계있는 작품 등 현재 약 920 작품 정도 의 필름을 수장(収蔵)하고 있습니다. 필름은 귀중한 영상 문 화재로서 온도・습도가 철저하게 관리된 수장고(収蔵庫)에 보관하고 있고 수장작품은 정기적으로 영상 홀・시네라에서 상 영하고 있습니다.  1991년에 개최된 아시아포커스 제1회째의 토크쇼에서 인도의 사이 파란지페 감독이 「후쿠오카에 아시아 필름어카이브를 만 드는 것은 어떻습니까? 」라는 제안을 한 것이 후쿠오카시 종 합도서관 필름 어카이브의 개설을 성사시켰습니다. 경제 및 사 회정세가 불안정하고 기후의 조건도 열악한 아시아의 국가・지 역의 영화인들이 절실히 원한 시설입니다. 여기에 필름을 보존 하면 영원히 작품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1996년, 영화제와 연동한 후쿠오카시 필름 어카이브가 후쿠오카시 종합 도서관에 창설되었습니다.   필름은 문화자산  최근, 아시아의 각국・지역에서도 필름 어카이브의 정비가 진 행되고 있습니다. 당시는 아시아영화에 초점을 맞춘 필름 어카 이브는 전혀 없었습니다. 수장하는 필름은 기본적으로는 네가 에서 새로 복사한 상영용 포지티브필름. 필름은 상온에서 보관 할 경우, 20년을 경과한 시점부터 퇴색, 열화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필름 어카이브의 수장고에 넣어두면 반영구적으로 제작 당시와 같은 색채, 상태로 작품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영화필름을 미술작품과 마찬가지로 문화자산으로서 취급하기 위한 시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필름 수장고  수장고 내부는 실온 5℃, 습도 40%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장고에서 필름을 꺼낼 경우는 실온을 조금 올린 예비 실에서 온도의 조정을 한 후에 밖으로. 수장고에 보관할 때는 역순으로 보관한다. 2시간의 극장용 영화 (35mm)의 경우, 약 3,300편 수장 가능. 아직은 여유가 있다.

  「원칙적으로는 수장작품을 외부로 대출하는 경우는 없습니 다만, 얼마 전에 베트남 대사관으로부터 수장하고 있는 작품을 빌리고 싶다는 의뢰가 있었습니다. 아시아영화는 저희만 보유 하고 있는 것도 있어서 이러한 의뢰를 자주 받습니다.」라고 영상자료과의 야히호 요시유키씨는 강조합니다. 후쿠오카시 필 름 어카이브에 수장된 것은 콜렉션 및 애호가로부터 기증 및 기탁된 낡은 필름도 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는 후쿠오카현 출신의 배우인 다카쿠라 켄 씨가 주연작을 16mm 필름에 프린트 한 개인소장의 필름 44 작품을 후쿠오카시 필름 어카이브에 기탁했습니다.  「전쟁 종료 후의 하카다항의 귀환을 촬영한 필름이 있습니 다만, 규슈대학의 교수가 그 필름을 연구목적으로 보고 싶다고 찾아오기도 하고. 평소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영상자료입니 다만, 연구자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연구자료인 것입니다. 그러한 일은 1년에 몇 번이나 있습니다.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개인이 촬영한 낡은 필름이라도 거기에는 그 시대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영상자료입니 다.」 라고 야히로 씨는 말합니다.  낡은 필름이 보물로   개인 수집가로부터 기증받은 필름 중에서 「도레미파 선생」 (1951년・쿄우에이 제작)이라는 1편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보수하면 어느정도 볼 수있는 상태로, 작품에 관해서는 몰랐 습니다만, 상당히 재미있어서 교육영화로서 상영했습니다. 실은 영화사적으로도 귀중한 작품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 습니다. 감독은 키타 켄지, 극본은 츠쿠다 준이라고 크레딧이 작성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극본의 츠쿠다 준이라는 사람이 이 작품의 감독으로, 영화의 제작중에 사망했다고 합니다.」이 츠쿠다 준이라는 사람은 전쟁 전의 무성영화에서 영화감독・극 본가로서 활약했던 츠쿠다 겟슈 감독의 본명입니다. 「도레미파 선생」은 츠쿠다 겟슈의 유작이었습니다. 도쿄의 필름센터에는 전쟁 전의 작품이 8편 정도밖에 보존되어 있지 않은 감독의 유 일한 전쟁 후의 감독작품이라는 점에서, 영화사적으로도 귀중한 작품입니다.  영상 홀・시네라  필름 어카이브 수장작품의 상영을 중심으로 수많은 기획 상영을 하고 있다. 좌석은 242석과 휠 체어석 4석. 정원제 ・매회 교체제. 관람료:성인 500엔/대학생・고교생 400엔/중학생・소학생 300엔. 특별상영은 별도요금.

 「상영의 정보를 본 토야마에 사는 유족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상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유족은 어릴 때에 「도레 미파 선생」을 감상한 기억이 있는데, 어디에도 영화가 없어 서 계속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야시히마 히 데아키 주연의 『사쿠라가이의 노래』 및 『아자미의 노래』 의 작곡가로서 유일한 주연작. 이것도 생존 시에 출연한 영화 를 찾고 있던 가마쿠라의 관계자분이 연락해 줘서 알게 되었 습니다. 인터넷이 보급한 장점은 이러한 점인 것 같습니다.」  필름을 보존한다는 일  최근은 디지털로 촬영되어, 상영도 디지털로 하는 작품도 있고 아시아포커스에서 상영하는 작품 중에서도 디지털작품을 자주 볼 수가 있습니다. 디지털미디어로 보존하면 장소도 차지하지 않고, 취급도 편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디지털 및 비디 오는 포맷이 달라서 재생되지 않거나, 내용조차 알 수 없는 경 우도 있습니다. 기술도 점점 진화해 가고 그때마다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비디오 및 DVD 등은 작품 의 내용을 확인하는 정도의 경우에는 편리한 것입니다. 영화의 35mm 필름은 통일된 포맷이므로 영사기만 있으면 어디에서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100년 전의 필름도 이곳의 영사기에 걸어서 상영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표현매체로서도 보존매체로서도 필 름은 압도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야히로씨는 강 조합니다.디지털에 의한 어카이브라는 것은 우선 포맷의 통일이 중요합니다. 필름 어카이브로서는 그러한 디지털작품도 필름으 로 변환해서 관리・보존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그렇게 하면 앞으로 어떤 작품이라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10년 이상 세월이 흐른 후, 후쿠오카시 필름 어카이브의 재산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있을 것입니다.

되살아나는 사라진 영화들 묻혀 있는 보물을 찾아내는 필름 복원 문화재로서 수많은 필름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수장고에 넣어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철저한 필름의 품질관리가 필요. 또 낡은 필름을 수리・복원해서 영상자료로서의 가치도 찾아내 가야 합니다. 필름 어카이브 영상자료의 품질관리를 담당하는 영상관리원 마츠모토 케이지 씨에게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필름의 관리 필름이 도착하면 우선 납품검사, 상영용 필름의 상태를 체크합니다. 필름의 상태를 수치로 바꾸어 기록하는 작업을 합니다. 어디에 편집한 부분이 있다는 등, 이러한 것을 피트, 콤마 수까지 산출해서 전부 기록해 갑니다. 나중에 필름에 편집하거나 보수작업이 들어오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전부 수치로 조사하는 것과 동시에 언어로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두 개로 이 상영용 필름의 상태는 이러하다고 필름의 컨디션을 기록, 차트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상영이 오래간만인 (10년 만의 상영)의 경우, 그리고 외부에 내 보낼 경우도 상태가 변해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으므로 납품 시에 만든 차트와 비교하면서 반드시 체크합니다. 같은 필름을 몇 번이고 보게 되는 것이지요. 보수가 필요한 낡은 작품 등을 보수해서 편집기에 걸 수 있도록 하고 거기서부터 어떻게 영사기에 걸 수 있을지 판단하는 작업까지 하고 있습니다.  부패하는 필름 다양한 소재의 필름이 있어서, 그것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옛날의 가연성 필름의 대응이 제일 부담스럽기 때문에 신중하게 작업을 합니다. 귀중한 필름이라도 부패한 경우도 많으므로 부패한 가스의 악취를 맡으며, 다양한 약품을 사용해서 작업합니다. 필름의 부패는 트라이아세테이트라는 성분이 가수분해함에 의해서 발생합니다. 습도가 높으면 가수분해해서 초산가스가 발생. 그렇게 되면 필름이 점점 녹아서 최종적으로는 고형화 현상을 일으켜 딱딱한 원반형이 됩니다. 환경에 따라서는 20년도 지나지 않아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컬러필름은 동시에 퇴색이 시작되므로 1980년대의 필름은 지금 잘 보존해 두어야 합니다. 70년대의 필름은 손을 대기 어렵습니다. 새빨갛게 퇴색되어 있기 때문이죠.

 사라진 영화들 잠재적으로 부패필름 및 퇴색해가는 필름은 세계의 각 나라에서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빨리 어카이브에 보관해야 합니다. 온도 5도, 습도 40%로 유지된 보존고에 넣어두면 보존뿐만 아니라 부패와 퇴색으로부터 필름을 지킬 수 있습니다. 후쿠오카시 필름 어카이브는 아직 14년의 짧은 역사이지만 창립 당시에 수장보관한 80년대에 현상한 필름은 전혀 퇴색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카이브의 역할이 증명될 것입니다. 수장고의 자료는 세월이 흐를수록 가치가 높아집니다. Orphan film(고아 필름)이라는 주인도 모르고, 이미 정크(폐기물) 되어 있을 필름을 어째서인지 개인이 가진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창고에 방치된 오래된 필름을 인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패한 것도 많지만 잘 손질해서 볼 수 있는 상태로 복원해서 내용을 확인하면 깜짝 놀랄 정도의 작품이 섞여 있습니다. 요리스 이벤스 ※의 작품이라든지. 보물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겉모양은 쓰레기 같은 필름의 산더미에서 부패가스의 악취를 덮어쓰면서 사라진 영화를 발굴하고 세상에 선보이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작품의 권리에 대한 관련사항을 조사한 다음, 세상에 공개합니다.

 영화의 복원 복원을 통한 큰 수확은 「바그다드의 공주」(1948년・산코우영화사 제작)라는 작품. 후쿠오카에서 발견된 기증 필름에 포함된 장편 흑백 애니메이션입니다. 도쿄 필름센터에 작품은 있었습니다만, 타이틀도 엔딩도 없는 불완전한 것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제대로 갖추고 있지만, 필름상태가 좋지 않아서 1개월에 걸쳐서 복원작업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볼 수 있는 상태로 복원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비디오로 만들어서 필름센터에 보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공동복원을 하자는 제안이 왔습니다. 필름센터가 갖고 있는 버전과 저희가 갖고있는 버전, 각각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영상이 있어서 양쪽의 좋은 부분을 발췌해서 장편 버전으로 만들었습니다. 필름센터에서 영어자막을 달고 독일의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오프닝 작품으로서 상영했을 겁니다. 후쿠오카에서 발견된 필름이 최종적으로 국외에서도 소개된다는 것은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그다드의 공주」 필름복원의 과정 1)부패한 필름 꺼내기 이것은 가수분해가 진행된 낡은 35mm 필름. 이 필름은 2005년에 후쿠오카시의 개인수집가가 기증한 약 800 롤의 필름 중의 하나. 「바그다드의 공주」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2)필름 되감기 우선 오염된 필름의 측면을 알코올로 닦으면서 정성스럽게 새로 감는다. 초산의 냄새가 강하기 때문에 마스크와 보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3)청소기로 진공 팩 강한 초산냄새가 외부로 새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진공 팩은 문득 생각해 낸 아이디어에 불과하지만, 시험해보기로 했다. 조금은 효과가 있는 것 같다. 4)필름을 수장고에 보관 진공 팩 처리한 필름을 수장고에 보관한다. 수장고는 실온5℃, 상대습도40%의 보존환경을 준수하고 있다. 5)필름 보수 필름뷰어로 영상을 보기 위해서는 보수를 해야 하기 때문에 1 롤씩 보수를 한다. 퍼포레이션의 수리용 테이프는 일본에서는 구하기 어렵다. 6)작품의 조사 도서관이기에 서적자료는 풍부. 잡지의 과거기사 등에서 작품의 이력을 조사한다. 7)소생하는 필름 보수를 끝내면 오염되어 있던 필름이 몰라볼 정도로 상태가 깨끗해진다. 단, 그것은 측면뿐. 여기서부터 실제로 영상을 체크한다. 8)필름 편집기(Steinbeck)로 영상을 보다 이렇게 확인하나 영상을 바탕으로 도쿄 국립 근대미술관 필름센터가 소장하고 있는 바그다드의 공주와  후쿠오카에서 발견된 바그다드의 공주를 비교해서 양쪽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작업을 공동으로 시행하고 이 작품의 최장(最長) 판을 제작했다.

영화와 관객을 연결하기 위한 기술 영상 홀・시네라 영사기사・카시와기 카즈오 씨 16mm필름도 상영이 가능한 영사기. 그 밖에 자막투영 및 비디오 소재 등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프로젝터도 설치되어 있다. 옛 기술로 영사 귀중한 필름을 소중하게 보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영화는 스크린에 비춰서 많은 관객이 감상해줌으로써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후쿠오카시 종합도서관에서는 소장된 작품을 정기적으로 영상 홀 시네라에서 상영. 그중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귀중한 필름도 있어서 그 작품을 취급할 때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통상 35mm 영화필름은 1,500피트의 필름 통에 장착되고, 1 롤에 15분~20분 정도, 2시간 영화의 경우, 약 6~7통에 나누어져 있습니다. 필름 수장고에서도 1 롤씩 필름 통에 보관. 시네라에서는 2대의 영사기를 교대로 사용해서, 필름을 1 롤 씩「타마가케」라고 불리는 옛날 방식의 기술로 영사하므로 기술이 뛰어난 전임의 영사기사가 필요합니다. 개관이래, 영사를 담당하고 있는 분은 카시와기 카즈오 씨. 과거에 영화의 필름은 가연성의 위험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영사하려면 국가자격이 필요했습니다. 카시와기 씨는 1957년에 영사기사의 자격을 취득, 후쿠오카시내의 극장에서 20년 가까이 영사기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 후, 영화회사의 선전부로 이직. 정년퇴직 후,  다시 영사기사로서 시네라에서 영화상영을 뒷받침해 왔습니다. 「지금은 필름을 1편으로 연결해서 자동상영을 하는 극장도 많아져서 영사 자체는 간편해졌습니다. 특별한 자격이 필요 없어서 본격적인 영사기사를 육성하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어떠한 영화라도 최고의 상태로 스크린 사이즈(종횡 비율)도 스탠다드(1:1.37), 유러피언 비스타(1:1.66), 미국 비스타(1:1.85), 시네마스코프(1:2.35)로 다양하다. 정확히 사이즈를 맞춰서 상영하는 극장은 일본에서는 의외로 적고, 화면의 위아래가 잘린 채로 상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사기의 어퍼쳐(빛이 닿는 화면의 외곽을 설정하는 부분)및 렌즈를 교환한다. 음성도 돌비 디지털 등 녹음 시스템에 따라서 신호를 읽는 램프를 교환합니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나라・지역의 작품이 있으므로 작품을 영사할 때마다 주의를 기울입니다. 필름도 작품에 따라서 규정사이즈와 미묘하게 다르거나 탄력성도 다릅니다. 스크린의 마스크도 미세조정을 하면서 작품의 화면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항상 깨끗하게 보여주는 것이 저희의 일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가장 좋은 분위기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카시와기 씨. 항상 영상과 소리를 최고의 상태로 보여주기 위해서 필름 1 롤마다 영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옛날의 상영방식과 최신의 설비를 갖춘 시네라 이기에 모든 시대의 작품에 적절한 대응이 가능합니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상영개시, 예 종료했습니다라는 정도의 간단한 방식이 아닙니다. 영화와 관객을 연결하기 위한 기술과 지혜가 넘치는 곳이 바로 후쿠오카시 필름 어카이브 시네라입니다.  보통은 1초간에 24 콤마의 영사입니다만, 무성영화는 16 콤마 및 18 콤마로 상영한다. 이 영사기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영사가 가능하도록 1 콤마씩 필름을 돌리는 속도를 바꿀 수가 있다.  롤을 바꾸는 (영사기를 교체)타이밍도 절묘.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한 프로의 기술이다. 필름의 상태에 따라서 포커스 및 프레임이 어긋나거나 예측 불가능한 트러블이 발생하기도 하므로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영사의 상태를 확인하는 카시와기 씨.  「이전에 시네라에서 다카쿠라 켄 특집을 했을 때, 켄 씨가 살며시 상영회장에 오셨습니다. 일부러 영사실까지 올라오셔서 오랜만에 만났습니다만, 기뻤습니다.」라고 하는 카시와기 씨.

후~아의 아시아 여행 역사를 느끼는 사찰 탐방 코스 후쿠오카시 하카타쿠 ・고쿠쇼(御供所)・레이센(冷泉)코스 후-아 입니다. 역사적인 절과 주거가 남아 있는 고쿠쇼(御供所)・레이센(冷泉)지역. 좁은 골목길에 들어가면 조용하고 수목이 우거져 교토에 온 것 같다.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을 맛볼 수 있어요. 11/3(축)~7(일)에는 「고쿠쇼・레이센 라이트 업 워크 2010」이 열려요. 이 이벤트의 개최장이 되는 4개의 신사와 절을 소개할게요.  토우초우지(東長寺) 들어가 보고 깜짝 놀랐어요! 높이 10.8미터, 무게 30톤, 목조 좌상으로는 일본에서 최대급인 대불상이 반겨준다. 하카다역 옆의 비즈니스 거리에 이런 큰 불상이 있을 줄 몰랐어요. 참배는 무료이므로 참배합시다. 대불상의 밑에 있는 「지옥・극락 탐방」도 체험해 보세요. 암흑의 세계는 어트랙션을 접하는 기분으로 두근두근・・・약간의 흥밋거리도 있어요♪  묘우라쿠지(妙楽寺) 카마쿠라(鎌倉)시대, 1316년(正和 5년)에 창건된 묘우라쿠지. 여기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석비(石碑)를 발견, 「우이로우(ういろう.쌀가루에 흑설탕 등을 넣어 찐 과자)전래의 지(地)」 라고 적혀 있어요. 된다!   우이로우는・・・나고야의 명물이 아니었던가? 흠흠, 원래는 한방약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뿌리는 하카다에 있었군요. 그리고 전국(戦国)시대에 전쟁으로 불에 탄 기와 등이 묻혀 있는 흙담「하카타베이」 도 남아 있어요. 에비스(恵比寿)상도 묻혀 있어서 무심코 벽을 응시하게 된다!

 조우텐지(承天寺) 카마쿠라시대, 1242년(仁治 5년)에 쇼우이치 코쿠시 (聖一国師)에 의해 문을 열게 된 선종사원(禅宗寺院). 여기도 발상지를 의미하는 석비가 즐비하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우동・소바의 발상지. 그 옆에는 만쥬 발상지.결국 쇼우이치 코쿠시가 제분 방법과 밀가루를 사용한 조리 방법으로 우동, 소바, 만쥬를 널리 보급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야깃거리로 기억해 두자. 하카타는 역시 예부터 아시아의 현관이었군요.  쿠시다신사(櫛田神社) 757년(天平宝字 원년)에 창건, 하카타의 수호신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쿠시다신사. 여기는 참배뿐만 아니라 볼 것이 가득하다. 1년 내내 볼 수 있는 카자리야마(飾り山), 「앗칸베-(あっかんべー)눈초리를 내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한 후우진라이진(風神雷神)의 조각, 누문(楼門)의 천정에 있는 에토에호우반(干支恵方盤), 엔무스비(   )에 이익이 있을 것 같은 후후이초우(夫婦銀杏. 은행나무)에도 주목. 배전(拝殿) 안에는 빨강 및 검정의 큰 텐구(天狗. 얼굴이 붉고 코가 큰 상상의 괴물.) 의 가면이 가득! 라이트 업 워크가 개최되면 배전의 내부도 조명으로 장식되어 매우 예뻐요. 고쿠쇼・레이센 라이트 업 워크 2010 위에서 소개한 4개의 신사와 절이 장엄하게 라이트 업. 쿠시다 신사배전, 조우텐지호우조우(承天寺方丈)・카이잔도우(開山堂),토우초우지록가쿠도우(東長寺六角堂),묘우라쿠지 카이잔도우(妙楽寺開山堂)등 평소에는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의 특별 참배도 있으므로 이 기회에 한번 가 보세요. 조우텐지 앞의 거리에는 하카타 야시장이 등장. 우동 및 만쥬 등, 하카타의 음식, 전통 공예품의 판매를 한다. 클래식 등 라이트업 콘서트도 있음. 시원한 가을의 밤에 딱 맞는 로맨틱한 이벤트다 11월3일(경축일)~7일(일)18시~21시(큰 비가 아니면 개최・입장은 20시45분 까지) 당일구매권 800엔, 사전구매권 600엔(4장 묶음・1시설1매, 반드시 보호자 동반) 문의:092・711・4355(후쿠오카시 유치 선전과)

훌쩍떠나는 시간여행   후쿠오카와 아시아의 교류는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고대부터 아시아와 교류해 왔습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그 옛 시대의 기억이 남은 장소를 우연히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 칼럼에서는 그런 장소를 소개.  후쿠오카의 거리를 산책하다가 발견하면 먼 옛날로 시간여행을 해 보십시오.   네 번째  이야기 야구라몬아토(矢倉門跡)   하카타 구청의 서쪽에 있는 후지타 공원. 안쪽의 좁은 골목 입구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야구라몬아토(矢倉門跡)」라고 적혀 있는 석비(石碑)가 있습니다. 전국시대의 하카다는 사카이와 동등한 자치도시(주민 자치에 의한 도시)였습니다. 16세기에 일본을 방문한 기독교의 선교사들은 당시의 하카다가 베니스와 비슷한 도시인 것에 놀랐다고 합니다. 노부나가 (信長)에게도 인사를 한 루이스・프로이스는 「이 도시의 주민은 유복하고 부족한 게 없는 상인들이다…」 라고 저서『일본사』에 적고 있습니다.  1419년(応永26년), 조선이 대마도를 습격한 「오에이노 가이코우(応永の外寇)」가 일어납니다. 조선은 당시, 식량과 무역품을 탈취하지만, 토끼와 같이 행방을 감추는 왜구에 의해 곤란함을 겪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조선이 두려워한 것이 대마도의 해민(海民)이었습니다. 이 습격에 충격을 받은 당시, 무로마치막부의 장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모치(足利義持)는 진상규명을 위해 하카타 묘라쿠지(妙楽寺)의 스님, 무가이 료게이 (無涯亮睨)를 정사(正使), 하카다 상인・히라가타 요시히사(平方吉久)를 부사(副使)로 조선에 파견했습니다. 그 다음 해, 조선은 송희경을 파견. 송희경이 일본에 왔을 때, 불손세력으로부터 일행을 지키기 위해 도시의 도로에 문이 만들어졌다고 전해집니다.  16세기 후반에는 하카타에서 외부로 통하는 장소에도 문이 있어서, 문지기를 두게 되었습니다. 문은 자치도시를 지키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서 전쟁 등이 발생하면 문을 폐쇄했었습니다.  지금, 석비가 서 있는 장소는 겡키(1570~1573)초기, 오오토모 씨의 가신・우스키아와노카미시게츠구(臼杵安房守鑑賡)가 요새를 지어, 남방에 호를 파서 문을 세웠다고 에도시대의 지방지(地誌)『세키조우시』 에 적혀 있습니다. 이 일대는 현재의 주소표기로는 하카타에키 2초메입니다만, 이전은 야구라몬마치라는 마을의 이름이며 문의 기억을 마을의 이름으로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저 한 개의 석비에 불과하지만, 과거에는 자치도시였던 하카타를 연상케 합니다.   ※참고문헌/『세키조우시』츠다 겐코・겐칸    1765년 、『되살아 나는 중세의 하카다』아사히신문 후쿠오카 본부편 아시쇼우보 1990년 『자이카이 큐슈』 「하카다학」다케노 요코 2003년 5월호, 『일본사』루이스 프로이스  헤이본샤 토요분코 1965년

ASIANTOPICS vol.4  아지비 전람회 르포  vol.3  아지비는 작품을 보기만 하는 미술관이 아닙니다! 아시아의 아티스트와 연구자가 후쿠오카에 체재하며 시민과의 워크숍 및 교류 프로그램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아지비 개관이래, 과거 10년간의 교류프로그램을 되돌아 보는 기획전을 지금 개최 중. 아티스트들은 후쿠오카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했을까요?    후쿠오카에 관한 것・사람 – 체재 제작의 궤적 기간:2010년9월30일(목)~2010년12월25일(토) 전시장:아시아갤러리 A  우선은 아티스트가 후쿠오카 체재를 통해 알게 된 「후쿠오카에 관한 것」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태국의 스티・쿳나 위차야농의 작품『역사수업(후쿠오카)』은 후쿠오카 대공습에 대해서 체험자를 인터뷰하고 거기서 얻은 이미지의 일러스트 및 문자를 책상의 표면에 새긴 것. 책상은 폐교된 하카타구 오하마 초등학교의 도공실 책상을 사용하고 시민도 참가해서 같이 조각했다고 한다. 전시장에는 종이와 색연필이 있으므로 책상 위에 종이를 놓고 연필로 빗기면 후쿠오카 대공습에 대해서 배울 기회를 다 제공해 줍니다.      이어서 「후쿠오카의 사람」코너. 후쿠오카의 사람들을 그린 초상화, 사진, 영상 작품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김 영진의  『그네, 어머니의 거울』은 후쿠오카에 사는 229명의 여성을 촬영한 작품. 여자아이부터 아주머니까지 다양한 세대의 여성이 그네를 타고 「어머니」」「○○짱」등, 상대를 찾기라도 하듯 서로 부르는 영상이 계속해서 흘러나옵니다. 중앙에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 같이 그네가 흔들리고 있고 묘한 시간의 감각에 빠져듭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후쿠오카의 여성 한명 한명이 매력적이며, 예술작품의 힘을 느꼈습니다.  Editor s notes 외국인 아티스트의 눈을 통해서 보는 후쿠오카의 역사와 사람들. 작품 전시를 함으로 인해 새롭게 생각할 기회를 얻기도 하고 평소에 접하는 경치가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후쿠오카의 사람들이 작품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앞으로도 교류 프로그램은 개최되므로 작품 제작에 참가해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참가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ASIAN TAKARABAKO 아시아 맛 기행 vol.1   아시안 칼럼 vol.2 오  쿠시다상 (쿠시다 신사의 애칭)은 국제적이야! 신사에 가면 어쩐지 모르게 뽑고 싶어지는 오미쿠지(신사(神社)나 절에서 참배인이 길흉을 점쳐 보는 제비). 하카다의 수호신「오 쿠시다상」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하게 자리 잡은 쿠시다신사에는 일본어 외에 영어, 중국어, 한국어의 오미쿠지가 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까? 최근에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는 후쿠오카시. 「관광PR에 한몫을 한다면・・・」라는 후쿠오카시 관광진흥과의 상담이 계기가 되어 2008년 10월에는 우선 영어 버전을 설치, 그다음에 한국어, 중국어가 등장했습니다. 신기해서 영어, 중국어, 한국어 버전을 뽑아 보았습니다. (읽지는 못하지만. 어느 것이나 300엔, 양심적이다!). 결과는 ・・・영어는 럭키, 중국어는 소길(小吉), 한국어도 소길이었습니다. 묶어둔 오미쿠지를 보니까 일본어 이외의 오미쿠지도 많이 있었습니다. 묶지 않고 기념으로 가져가거나 선물로 챙겨두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각국의 오미쿠지 외국에도 오미쿠지는 있을까? 라는 의문이 생겨서 편집부의 외국인 부원에게 각국의 오미쿠지에 대해서 돌격 인터뷰! 중국 중국의 오미쿠지는 불교신앙이 깊이 자리 잡은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북경 등의 북부지방에서는 본 적이 없습니다. 소원 등을 구체적으로 마음속에 되새기면서 긴 대나무 봉이 들어 있는 통을 흔들고 한 개를 땅에 떨어뜨립니다. 봉에 적혀진 번호의 오미쿠지를 받아서 스님의 해설을 듣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중국・홍콩 출신 토비 씨  한국 한국에는 오미쿠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은 점을 믿는 사람이 일본보다 많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를 들면 결혼, 이사 등의 택일을 점술가에게 묻기도 하고. 그리고 첫눈이 오는 날에 데이트를 한 커플은 행복해 진다(ハート)등의 징크스를 믿는 젊은이도 많이 있습니다. 한국・대구출신 박 현철 씨

지난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