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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호 【아시아포커스 후쿠오카국제영화제 특집】 영화를 통한 국제교류 20년, 새로운 아시아를 만날 수 있다.

특집표지

특집:영화를 통한 국제교류 20년, 새로운 아시아와 만날 수 있다.아시아포커스 후쿠오카 국제영화제2010 인터뷰 영화로 아시아와 교류한다.후쿠오카만의 독자적인 영화제를 목표로  아시아먼스의 주요사업으로서 1991년부터 아시아의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여 소개함으로써 시민의 아시아에 대한 이해를 돕고 문화교류, 국제교류를 추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아시아포커스 후쿠오카 국제영화제」.2010년, 올해로 20회를 맞이했다. 현재, 상영작품의 선정, 프로그램을 손수 총괄하는 영화제의 디렉터인 하리키 야스히로 씨에게 그동안의 노고, 포부 등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아시아포커스 후쿠오카 국제영화제 디렉터 하리키 야스히로 Yasuhiro Hariki후쿠오카시 출신. 아시아포커스 후쿠오카 국제영화제의 기획위원을 오랫동안 역임한 후, 2006년 12월에 영화제의 디렉터로 취임. 큐슈오오타니 단기대학의 교수로서 연극, 영화론 등의 교편을 잡고 있다.

인터뷰-1 우리들의 유형무형의 재산 ―아시아포커스 후쿠오카 국제영화제(이하 아시아포커스)도  올해로 20회,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계속하면 힘이 된 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라는 것을 주제로 아시아를 주시해 왔습니다. 이 일을 계속하다 보니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서,아시아의 실질적인 변화를 어느 정도 부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더욱더 박차를 가하고자 합니다.―후쿠오카시 종합도서관과의 연계도 특색이 있는 것 같습니다.그렇습니다. 아시아포커스의 특징은, 영화제에서 상영한 작 품을 아시아의 문화유산으로서 종합도서관의 영상라이브러리에 보존합니다. 이러한 형식의 영화제는 찾아보기 어렵지요. 영상라이브러리에는 최근 수십 년간의 아시아의 「시대」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시대」를 검증할 수 있습니다.―후쿠오카만이 가진 영화제의 장점은?뭐니뭐니해도,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인과 관객들 간에 거리감이 없고 친밀하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다른 큰 영화제 같은 경우, 일반관객은 영화를 감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멀리서 단상에 있는 게스트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반면, 후쿠오카는 게스트도 관객처럼 영화제를 즐기고, 휴식시간에는 로비 등에서 편하게 관객들과 교류를 갖습니다.―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이 교류의 깊이를 더해 주는군요. 후쿠오카에 온 내빈들이 자주 말씀하십니다만, 시민이 대부분 친절하다고. 내빈들도 체재 중에는 후쿠오카의 분위기에 완 전히 녹아들어, 즐기는 것 같습니다. 역시 후쿠오카는 문지방이 낮다고 할까, 도시의 크기가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딱 좋은 크기라서 그런 것일까요?―적당한 크기의 도시라서 방문객들이 편안히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후쿠오카가 이러한 도시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아시아포커스와 같은 영화제를 계속해서 개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영화를 통한 교류를 지속함에 따라, 우리에게 유형무형의 재산이 축적되어 갑니다. 형태를 갖춘 것으로서 널리 알리는 것은 어렵습니다만, 이것이 후쿠오카가 가진 도시의 매력 중의 하나로서, 외부에 널리 퍼져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터뷰-2 최선의 노력으로 좋은 작품을 상영한다. ―환경이 많이 바뀐 것은 아닌지요? 아시아포커스가 시작된 20년 전과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옛날은 미공개의 아시아작품이 많이 있어서, 좋은 작품을 마음껏 끌어 올 수 있었습니다. 유사한 영화제도 그다지 없었습니다. ―근래에는 각지에서 아시아영화를 주제로 한 영화제도 늘어나고 있는데요. 좋은 작품들은 다른 대도시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빼앗기고 마는 것이 현실입니다. 역시 지방의 영화제란…. 아무리 애를써도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현실정은 그중에 서 남은 좋은 작품을 고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영화제에서 상영되길 원하는 작품의 요청은 많이 있습니까? 많은 작품을 보내옵니다만, 역시 수준은 천차만별입니다. 저희 쪽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과 방향성이 다르거나 하면,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영화제에서는 상영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정말이지 어려운 부분입니다. 결국, 이쪽에서 직접 발 벗고 나서서 저희가 요구하는 작품을 고르는 수밖에 없습니다.―어떠한 방법으로 작품선정을 하고 있습니까? 아시아포커스가 끝나면, 우선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를 시작으로, 동경국제영화제, 동경 FILMex를 조금 보고, 인도의 케랄라주, 로테르담, 홍콩 등의 국제영화제를 매년 방문하고 있습니다. 기본은 이러한 영화제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선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KOFIC(한국영화진흥위원회) 에 가는 일도 있습니다. 거기서는 그 해에 제작된 한국영화를 전부 보여줍니다. 이처럼 한국은 외국에 작품을 내 보내는 체제가 잘 갖춰져있습니다. 일본도 이러한 시스템을 갖췄으면 좋겠습니다.―큰 영화제와는 규모도 지명도도 다르니까요. 무대의 규모가 전혀 다르므로, 아시아포커스는 큰 영화제와 같은 방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활을 걸고 어떻게 할 것인지, 향후의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삼류의 영화들만 모으면 영화제 자체가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므로, 이를악물고 좋은 작품을 상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점에서 수준을 낮추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명맥을 유지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3 재미있는 작품이란 무엇인가? ―아시아포커스에서 상영하는 작품의 포인트는? 거기에는 「재미있는 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대전제가 있습니다. 요컨대 많은 사람이 보아서 이해가 가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화의 작품성이 좋다는 것만으로는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너무 상업적인 작품도, 반대로 말하면 왜 영화제에서  일부러 상영하느냐고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누가 봐도 알기쉽고, 수준이 높은 작품은 뜻밖에 적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영화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나라 및 지역의 작품을 선정하는 방법도 있군요.  접할 기회가 흔치 않은 그러한 작품을 많이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좋은 작품일지라도 관객들은 등을 돌립니다. 말레이시아의 영화라든지, 아주 좋다고 생각한 작품일지라도  관객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그것에 비하면 중국이나 한국의 작품은 썩 좋은 작품이 아닌데도 관객이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디렉터인 나로서는 조금 분한 마음이 듭니다.―당연히 관객 수도 늘려야 하니까요. 그리고 관객을 부르기 위해서 선정한 작품인데도 관객이 오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관객층을 넓히기 위해 새로운 경향의 작품을 상영하지만, 새로운 관객층의 관심을 끌기는 쉽 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정의 관객층도 있습니까? 예를 들면 인도의 「옴 샨티 옴」같이 샤룩 칸 주연의 오락영화를 상영하면 전혀 다른 곳에서 그것을 볼 목적으로 오는 관객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영화는 거의 보지 않습니다. 그 작품만 봅니다. ―열광적인 팬들이네요. 그러한 분들이 다른 작품도 보고 나서, 샤룩 칸을 보고 「아시아포커스 재미있었다.」라는 평을 듣는 것이 가장 기쁩니다.

아시아포커스 후쿠오카 국제영화제2010 2010년의 상영프로그램에 관해서 올해의 신작 프로그램은 21 작품을 상영합니다만, 작품의 공통점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습니다. 게다가 주제의 규모가 매우작습니다. 일상적인, 자기주변의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어느작품을 봐도 작은 곳에서밖에 성립하지 않는 이야기뿐이고, 그것을 얼마나 조잡하지 않게 따라잡고, 잘 그려내는가가 요즘의 작품이 아닌가 하고 느껴집니다. 올해의 작품경향은 「신변잡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이고 작은 터전에서 모두 열심히, 담담하게 살아간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 그러한 상황이 아닙니까, 큰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거짓말처럼 느껴져요. 그러한 가운데에서 대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인도의 호족들이 영국에 저항한다는 내용의 「케랄라의 사자」한 편.「7명의 사무라이」를 방불케 하는 대활극입니다. 희귀한 작품 중의 하나는 카스피 해 연안에 있는 나라 아제르바이잔의 「환상의 성채」. 아제르바이잔의 영화를 일본에서 소개 하는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 아닙니까?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기예감독이 만든 멋진 사이코 호러「포비든 도어」도 새로운 재능을 느끼게 합니다. 작년에 이어서 소개하는 작가들의 신작은 인도네시아의 「무지 개 병사들」의 속편 「꿈을 좇아서」, 중국조선족의 감독이 국경지역을 무대로 그린 「두만강」등도 주목 작품입니다.그 밖에도 09년 상영한 홍콩의 「벼랑 끝의 여인들」의 시리즈 제1작 「섹스 워커」에서 명감독의 기법에 매료되어 태국의 「흔한 이야기」의 아방가르드 풍의 제작방식, 호주의 애버리진(오스트레일리아의 토착민)인 젊은 연인을 그린 「삼손과 데릴라」,  정감 넘치는 영상으로 애정을 담아서 그린 말레이시아의 「물가의 이야기」등, 모두다 개성적인 작품들뿐이었습니다. 각각의 영화를 확실히 즐기고, 아시아의 참모습을 느껴 주시면 하고 생각합니다. (담화) 디렉터 하리키 야스히로 ※상영프로그램 등 상세한 내용은 공식홈페이지를 이용 바랍니다. 예고편 보기

특별대담 와카마츠 코지 감독 죽을 때까지, 화내고 살려고 생각합니다. 반세기 전부터 작품이 외국의 영화제에서도 물의를 빚었던 60년대의 뉴웨이브 감독, 와카마츠 코지.독립프로덕션 「와카마츠 프로덕션」을 세워서, 수많은 문제작을 발표하고, 세상에 질문을 던져 왔다. 근년「실록・연합적군 아사마 산장으로 가는 길」에서, 60~70년대, 이상사회를 원해서 혁명을 외친 젊은이들의 삶의 모습을 압도적인 강한힘을 바탕으로 그려,국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전쟁의 비참함을 그린 최신작 「캐터필러」에서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주연의 테라지마 시노부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예전부터 외국과 깊은 접점을가지고, 또한 발 빠르게 한국 및 중국의 영화인과 교류한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영화, 문화 그리고 전쟁을 이야기한다. 와카마츠 코지 Koji Wakamatsu 1936년. 미야기현 출신. 1963년, 핑크영화『달콤한 덫』을 통해 영화감독으로서 데뷔. 저예산 이면서도 핑크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을 보였다.와카마츠 프로 첫 작품 「벽 안의 비사」(1965)이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되어 영화계에 파문을 부른다. 인간의 근원적인 요소인 에로스와 폭력을 주제로 한 충격적인 제작방식, 호쾌한 연출로 100편 이상의 작품을 제작, 감독. 오오시마 나기사 감독작품「사랑의 코리다」(1976)도 제작함.

감상한 사람이「이 영화 좋구나」라고 하는 영화를 만들면 됩니다. 아시아와의 영화교류  사회에 대해서의문을 가진 감독은 어디든지 있습니다. 작품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낀 것이, 지금은 감독을 그만둔 것으로알고 있습니다만 한국의 이장호. 사실은 이장호의 작품을 최초로 일본에서 상영한 것은 저희입니다.한국도 정부로부터 많은지원금을 받고 영화를 제작하고 있지만, 제작에 임하는 자세가 다릅니다.  중국영화는 장이머우 감독의「붉은 수수밭」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뭔가 자신이 만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미국처럼 물량이 아닌, 인간을 통해서 저런 영화를 만듭니다. 일본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중국인도 있다는 상담을 받고, 내가 좋아하는 감독을 데리고 갔습니다. 내가 비행기요금을 부담하고 후카사쿠 킨지씨, 최양일 등 모두 데리고. 「테츠오」도 데리고 갔다. 젊은이들이 제일 좋아한 것은 쓰카모토(신야)군의「테츠오」였지.  북경전영학원에서 상영했는데, 러브신등은 안 보이게 필름에 테이프 같은 것을 붙이고 상영(웃음). 그때 우리 일행에게 보여준 작품이 우티엔밍 감독의 「변검」. 보면서 후카사쿠와최양일이 엉엉 울고 있는 겁니다. 물론 언어는 전혀 모르지만요. 내로라하는 후카사쿠와 최양일이 울고 있으니까 이 영화를일본에 갖고 가면 분명히 히트작이 될 것으로 생각해서 「이영화는 내가 사겠다!」라고 그 자리에서 말 했습니다.(웃음) 상만큼 안 좋은 것은 없다.  자신의 나라에서 인정받지 못하니까, 그 나라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나는 50년 가까이 영화감독을 하고 있지만, 나라로부터 인정받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알려진 일본의 영화감독으로는 타케짱(키타노 타케시)과 나, 코레에다  히즈카로 그리고 구로사와 기요시 정도뿐이에요. 내 작품의 경우, 유럽에서는 비디오 점에서 많이 팔리고 있어요. 어느 나라에서 인정받든지, 인정을 못 받든지 영화를 본 사람이 「이 영화 좋구나」라는 영화를 만들면 되는 겁니다. 「캐터필러」를 베를린에 가져가서, 테라지마 시노부씨가 여배우상을 받고 이것으로 「해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상을 받아도 일본에서는 떠들지 않기 때문이죠. 매스컴은 소개 해 주지 않아요. 테라지마씨가 받았기 때문에, 절대로 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운이 좋았다. 안 그러면 감독 혼자 설레발 치고 있는 것 같아서 (웃음). 「상만큼 안 좋은 것은 없다.」라는 말들을 하지 않습니까?  수상하면 다음 영화는 대체로 잘안 돼요, 이름은 잊었지만, 러시아의 철학자가 한 말입니다. 「인간이 상을 받거나, 훈장을 받거나 하면, 예를 들어 그 사람이 예술가라면, 그 사람은 이미 안 된다.」 라고. 나는 그 말이 가장 피부에 와 닿습니다. 상을 받으면, 다음은 더욱더 상과는 관계없이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서 가야 할 것 같아요. 소라리아 시네마에서 9월24일까지 상영아시아포커스 후쿠오카 영화제 2010 개최기간 중(9월18일~) 아시아포커스의 사전구매권, 입장권, 프리패스의 제시로「캐터필러」를 1,000엔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상영극장은 소라리아시네마(9월24일까지 상영예정)  또한 「캐터필러」의 입장권을 제시하시면  아시아포커스 상영작품(협찬기획을 제외)을 1,000엔으로 할인해 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극장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시대를 촬영하고 남긴다.  「실록・연합적군」을 레바논의 영화제에서 상영했습니다. 그곳은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나라이기에, 그러한 의미에서 「일본에서도 이러한 시대가 있었구나」라고, 모든 나라에서 깜짝 놀랍니다. 역시 필름으로 이렇게 촬영해 두면 좋지 않습니까?  그 당시, 다음에 어딘가에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레바논에서 일본적군의 오카모토 고조가 갇혀 있는 교도소의 외관을 실제로 촬영하고 있으니까 당국에 구속되었습니다. 특히 나는「RED ARMY」라고 적혀 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웃음).   나는 직접 자택의 1층에 제대로 된 필름창고를 만들었습니다. 직접 자금을 모아서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까 영화의 저작권은 내가 가지고 있지. 지금까지 100편 이상의 작품을 제작했지만, 당시로써는 비디오시대가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고, 필름의 보관비용 등이 힘들어서 폐기처분한 네거티브와 필름도 많아요.지금 남아 있는 작품은 50~60편 정도 될 겁니다. 이번 가을에는 프랑스에서 나의 작품을 40편 정도 상영합니다. 야단법석만 갖고는 안돼 후쿠오카의 아시아포커스에는 한 번도 초대를 받지 못했습니다(웃음), 후쿠오카는 필름을 제대로 된 시설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것은 주변의 지인들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게다가 6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풍의 작품도 수집하는 등, 문화적인 부분도있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영화제는 어디든지 같아서,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작품뿐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만, 영상라이브러리를 연계한 영화제는 훌륭한 것 같습니다. 영화제의 프로그램에서 젊은 작가들만이 모인 코너를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요. 그곳에 가면 베를린의 「포럼」 처럼 젊은이들의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좋다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영화제를 개최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절대로필요해요. 그저 도시활성화를 목적으로 영화제를 한다면 의미가 없어요. 역시 문화라는 것을 「정착시킨다」라는 취지라면 좋지만, 야단법석만 갖고는 안됩니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원래는 젊은 감독의 지원을 목적으로 시작되어 명칭도 이전에는 「젊은(young)·포럼 부문」이었기 때문, 신인의 작품이나 모험적인 작품 등 새로운 재능이 많이 소개된다.

화내는 것을 잊어버리면 인생은 끝입니다. 『캐터필러』로 가는 이정표  「실록・연합적군 아사마산장으로 가는 길」을 찍고 있었을 때에 「캐터필러」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눈 속의 훈련 신, 젊은이가 총을 들고 추위 속을 뛰어다니고 있어요. 좋은 대학에 가서, 그대로 가면 훌륭한 곳에 취직도 할 수 있는데,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이런 청년들이 나오게 되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그 장면을 찍었어요.  전쟁에 간 사람들이 돌아와서 태어난 것이, 바로 베이비 붐 세대. 당시 경제는 성장하는 한편, 일본의 미군기지에서 끊임없이 베트남으로 날아가 전쟁을 하고…. 부모의 세대들이 과거의 전쟁에 아무것도 반성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가 그들을 투쟁하게끔 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세대를 묘 사하고자 했어요.  나는 총격전을 벌이는 것 만이 전쟁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고있고, 역시 후방의 괴로움은 여성이나 어린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니는 전장에 갔다.」 (미국·1971년) 이라는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야전병원을 무대로 한 반전영화가 있었는데, 그런 스타일로 제작할 수 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대를 일본의 어디라도 있었을 것 같은 농촌으로 설정해서, 수족을 잃고 돌아온 부상병과 그 아내의 이야기를 그리게 된 것입니다. 그 전쟁과 와카마츠 코지 전쟁이 어떠한 것인가, 전쟁이 끝났을 당시,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이었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괴로웠어요. 음식도 매일 고구마의 줄기 같은 것이었어요. 나의 본가는 미야기현의 센다이 부근인데 센다이의 거리가 공습으로 탈 때, 불화살 탄이 작은 향 불꽃 같아, 어쩐지 예뻤던 것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인회의 훈련도… 저런 물통 릴레이로 불을 끌 수 있습니까? 죽창으로 미국 병사를 죽일 수 있습니까? 저것 모두 마을에서 시켜서 했어요, 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린 「일전오리(임시소집영장)의 붉은 종이」라든지, 「전과(戦果)를 올릴 때마다 행하는 제등행렬」등의 장면은 내가 실제로 본풍경입니다.남자 형제 가운데 4명이 군대에 갔습니다. 외국에도 2명, 모 두 운이 좋았던지 돌아왔지만. 그러나 모두 거칠어져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얻어맞았고, 말라리아에 걸려서 그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1945년8월15일, 종전의 날. 나는 강에서 물놀이하고 있었는데, 점심 먹으러 집에 갔더니, 아버지도 어머니도 라디오를 들으면서 울고 있었어요. 왜 울고 있는지 몰랐어요. 「일본이 전쟁에 패배했다.」라고. 전쟁에 패배한 것은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배고파요, 무엇인가 먹을 것을 주세요.」라고(웃음) 그날은 매우 더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여름의 하늘이 새파랗게 개서, 영화 속 마지막 장면의 하늘, 딱 그러한 풍경이었어요.

전쟁을 전한다는 것  나는「캐터필러」를 모든 학생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R15(15세 이상 관람 가)의 지정을 받아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각지에 전쟁 박물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늘 주장하고 있습니다. 끔찍한 사람들의 모습, 사진만이라도 좋으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제대로 보여 주기를 바랐고 게임 속의 전쟁과 는 다른 실제의 전쟁을 전해야 합니다.「정의의 전쟁 따위 없고, 전쟁은 살인이다」라고 하는 것을. 그리고 생명이란 것을냉철히 생각하길 바랍니다. 1982년에 베이루트에 갔습니다, 팔레스타인 난민 대학살의 2 일 후. 거리는 온통 시체의 산, 여성과 어린이들뿐. 그때 들은것은, 여자는 아이를 낳기 때문에 모두 죽이고, 어린이는 성장하면 게릴라 부대가 되어서 반드시 자신들에게 복수하므로 늦기 전에 죽인다. 남자는 도망을 잘 치기 때문에, 결국 전쟁의 희생이 되는 것은 언제나 어린이와 여성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이란 죽을 때까지 싫은 것은 싫고! 화낼것은 화내며 사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인생은 끝이다. 그렇지  못한 것이 일본인의 단점 입니다.  모두 좀 더 슬기로워지는 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무엇이든지 의심해 본다는 것. 물건을 만들거나 표현하는 사람은 한 번쯤은 의심해 보는 편이 낫습니다. 주변이 좋다라고 말하면, 모두 그쪽에 줄줄 따라가는 것 보다 자신은 「기다려」라고 한 다음, 한보 멈추어서 생각하는 힘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나는 그러한 삶의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주시당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테라지마 시노부  「캐터필러」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호평하는 것은 아닙니다.「일본영화에서 이러한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훌륭하다」,「이 러한 표현방법도 있다」,「이러한 반전영화도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요즘 젊은 기자들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상을 주었다는 것은 여성이 가장 감동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성 심사위원 2명의 표가 들어 있으니까요.대체로 여배우에게는 여성 심사위원들이 표를 안 주려고 합니다. 와카마츠 프로덕션은 전통적으로 스탶이 적어서, 모두가 영화를 만든다는 의식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나와 학생 인턴사원을 포함해서 스탶 14명, 촬영일 수 12일. 일반적으로 여배우는 메이커업이 필요합니다만, 나의촬영현장은 분장 스탶도 없고, 머리 모양도 의상도 전부 각자 알아서 합니다. 비서도 매니저도 없고, 현장에는 배우만 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영화를 제작하므로 모두 함께 만든다고 할까,이 역할은 테라지마씨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테라지마 시노부의 존재감  대형스크린에서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테라지마씨 밖에 없습니다. 테라지마씨에게 반 농담으로 「이렇게 작업복이 잘 어울리는 여배우는 없습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일본인의 체형, 쇼와(昭和)시대의 여성의 육체를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피부의 질감이 전달되는 연기가 가능하다는 것. 이번 촬영은 노메이크, 당시의 농가의 며느리가 예쁘게 화장을 한다는 것은 안 어울리지요? 화장하면 활짝 웃어도 피부 가 웃지 않아요. 노메이크의 테라지마씨는, 슬픈 얼굴을 했을 때 피부도 슬퍼 보입니다. 울 때는 정말 피부까지 울고 있어요. 계란을 깨트려서 껍질을 얼굴에 붙이는 장면은 보통의 여배우라면 무게를 잡고, 자신이 추하게 찍힌다고 안 할 겁니다. 이것은 테라지마 시노부 말고는 할 사람이 없습니다. 논 속에, 거머리투성이인데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러한 것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기에 빠져 듭니다.테라지마씨와는 한국의「전주국제영화제」에 초대되어 갔을 때, 같은 호텔에 묵게 되었습니다. 바에서 한잔하고, 테라지마씨가「저는 먼저」라고 인사를 하고 방에 돌아가는 뒷모습을 넋을 놓고 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까지 출연했던 영화는 봤습니다만, 실제로 본 그 뒷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서로 통했습니다.

아시아포커스 후쿠오카 국제영화제 특별협찬기획 배리어프리 상영회 많은 사람이 영화를즐길 수 있도록 하고싶다. 영화의 세계에 배리어프리의 실현을  「영화는 즐거운 것, 그리고 감동하는 것. 영화와 무대감상을 통해서 재충전하고 삶의 힌트를 발견하며, 인생관까지 바뀌는 예도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극장에서 영화감상을 즐기기 위한 환경정비가 보장되기를 바라며,『영화의 세계에 배리어프리의 실현을』 호소하면서 상영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라고 후쿠오카시 자원봉사 연락협의회의 가와사키 히로코 씨. 가와사키 씨 일행의 자원봉사단체는, 시각과 청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영화를 더욱더 즐길 수 있도록, 부음성과 일본어 자막을 자신들의 손으로 제작하고, 그것을 통해 배리어프리 상영 회를 개최하고 있다. 배리어프리 상영에 관여하게 된, 계기는 1998년 7월의 일이다.바이쇼우 미츠코 주연의 영화 「유키에」※의 상영안내를 알게 된 시각장애인으로부터 배급회사에 「저희가 봐도 알 수 있습 니까?」라고 하는 문의가 있어서, 그 배급회사로부터「부음성제작에 협력해 줬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가와사키 씨 일행은 도전하기로 했다. 그 후 20 작품 이상의 배리어프리 상영회를 개최. 2002년부터는 아시아포커스 후쿠오카 국제영화제의 협찬기획으로서 매년 실시, 2010년에 총 9회, 14 작품째의 상영을 맞이한다. 영화를 음성으로 전달하는 어려움   부음성이란, 영상을 음성으로 표현하는 것. 영화의 정경, 사람의 움직임, 내용이 크게 변하는 장면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음성화한다. 부음성을 제작하는 것은 낭독 자원봉사자들. 외국어로 된 영화는 대사를 일본어로 더빙하는 것도 필요하다. 화면을 보고 예행연습을 거듭해서, 영화가 자연스럽게 흐르게 시나리오를 수정한다. 「영상의 전체를 표현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관객분들이 제각기 자기 나름대로 이미지를 즐길 수 있도록, 선입관 없이 가능한 한, 간결하게 전달되게 하는 것이중요하다.」고 가와사키 씨는 부음성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상영회장에서는 모니터를 보면서 스탶이 부음성을 실시간으로 내 보낸다. FM 수신기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부음성은, 이어폰을 사용하는 관객에게만 들리는 구조다. 일본어 자막이 필요한 경우는 컴퓨터로 작성하고 프로젝트로 투영한다. 게다가 현재는 수동으로 투영의 타이밍을 재고 있다고 한다. 약 30명의 부음성 스탶은 작품별로 나뉘어, 자택에서 반복연습을 하고 주말마다 합동 예행연습을 통해 내용을 다듬어 간다.  「어려운 것은 캐스팅입니다. 성우가 본 직업은 아닙니다만,각 등장인물의 이미지를 관객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내레이션은 교대로 담당하고 있습니다만, 관객은 음성으로 구별하기 때문에 인물은 그렇게 교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관객으로부터의 감상과 요망도 반영하여, 더욱 좋은 상영을 위한연구에 여념이없다.

널리 퍼져가는 배리어프리 상영회「배리어프리 상영회는 장애인분들뿐만 아니라, 고령자분들도 잘 안 보인다거나 잘 안 들리는 부분을 해결해 주기에 기쁨을 받고 있습니다. 같은 상영회장에서 일반인도 포함해 다양한 분들이 동시에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영사를 담당하는 큐슈시네마알치의 요시무라 슈우지 씨는 말한다. 「최근에는 영화회사들도 이해를 해주고, 영화의 시나리오 등도 데이터로 지급되기 때문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향후는 지금까지 실시간으로 해 온, 영화의 부음성을 CD에 수록하는 작업을 추진해서 어디에서든지 상영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라고 가와사키씨는 향후의 확산, 발전에도 의욕을 보인다.  2008년6월, 배리어프리 상영의 보급을 목적으로 한 음성가이 드의 전국 네트워크가 발족했다. 정보교환과 기술의 공유를 통해서 배리어프리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의 수도 틀림없이 늘어날 것이다. 배리어프리 상영회는 부음성을 낭독하는 스탶뿐만 아니라, 영사담당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스탶, 상영회장의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스탶들, 약 50명의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실현할 수 있다.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고,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들의 소원을 통해서 형태를 갖추게 된 배리어프리 상영회. 「가장 바라는 소원은, 영화제작의 시점에서 배리어프리가 실현된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영화관계자의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라고 가와사키씨는 향후의 배리어프리 영화에 기대를 건다. ※「유키에」:1998년, 마츠이 히사코 감독작품. 알츠하미머에 걸린 미국에 사는 일본인 여성과 미국인 남성의 부부애를 그린 휴먼드라마.배리어프리 상영회 일시:9월25일(토) 각회 교체제 13:20「앤을 찾아서」(미야히라 타카코 감독/ 2009년/ 일본・캐나다/ 105분)16:00「윗마을 아랫마을, 그리고 국경선」 (노실・사이도후 감독/ 2009년/ 타지키스탄/  83분)상영회장:상영회장:에르가라홀 8층 대홀 요금:사전구매1,000엔    당일구매1,200엔 아시아포커스의 입장권으로 입장이 가능합니다.※시각장애인과그 보호자 되시는 분은, 각각 반액요금으로 입장 가능.사전구매권은 1매로 2명이 입장 가능.

후아의 아시아 여행 기분은 아시아!? 흥미거리 발견코스 후쿠오카시 서구 니시진~모모치해변 후-아입니다. 내가 후쿠오카시내에서 가장 아시아다운 느낌을 받는 장소, 그것은 니시진. 노점상에서 야채를 파는 아주머니, 「싸다, 싸요.」가게 앞에서 들려오는 힘이 넘치는 목소리, 동남아시아의 시장을 연상케 하네. 옛 정취가 느껴지고, 활기있는 니시진상점가를 출발해서 후쿠오카 타워, 야후 돔이 있고 오피스빌딩이 즐비한 멋스러운 임해 지역인 모모치해변까지 산책하고 왔어.타이헤이(太平)군과 요우코(洋子)양 아시아태평양박람회를 알고 있니? 후쿠오카에 사는 30대 이상의 사람이면, 물론 알겠지요. 통상적으로 부르는 명칭은 요카토피아. 1989년(벌써 20년 이상 전!) 후쿠오카시 출범 100주년을 기념해서, 시사이드 모모치의 주변을 개최장소로 열린 박람회입니다. 그 마스코트 캐릭터인 타이헤이군과 요우코양의 간판이 지금도 지하철 니시진역에 남아 있습니다. 아시아와 태평양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의상의 마스코트 타이헤이군과 요우코양, 옛 생각이 난다. 잘 보면 간판의 오른쪽 밑에는 「테즈카 프로덕션」이라는 글씨가 있다. 테즈카 오사무가 그린 것이었구나. 몰랐네. 니시진 상점가 아시아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후-아가 어느 나라에 가든지 꼭 들르고 싶은 곳이 시장입니다. 야채, 생선, 과일, 반찬 등, 시장은 맛있는 것이 가득한 보물 상자! 냄새, 열기, 파는 사람, 먹는 사람・・・, 그 나라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후쿠오카에서도 이런 아시아의 시장과 똑같은 느낌의 장소가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란 것이 니시진 상점가. 그리고 노점상이야말로 오직 하나뿐인 아시아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제철 야채, 건어물, 꽃 등을 파는 노점상이 즐비하다. 신기한 야채를 샀더니, 요리의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판매하는 아주머니와의 대화도 즐길 수 있다.

후아의 아시아 여행 세이난가쿠인대학 세이난크로스플라자 학생인 척하고 세이난가쿠인대학의 학생식당에 몰래 잠입!? 아니, 여기는 학생 이외의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벽돌 구조의 서양식 건물, 큰 창이 있어 밝은 실내. 학생식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화려합니다. 시대가 변했구나. 어린이를 데리고 온 어머니, 연세 지긋하신 노부부 등, 인근주민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후-아는 카페 점심을 선택. 메인 요리와 반찬 한가지, 밥 또는 빵, 수프, 미니 디저트까지 포함해서, 깜짝 놀랄 420엔! 식후에는 후-아가 매우 좋아하는 소프트크림조차도 140엔! 근처에 사는 사람이 부러워~.  사자에 씨 발안의 땅 니시진에서 모모치 해변으로 가는 도중의 로손 앞의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니・・・. 돌 조형물이 있는 공간이 있다. 여긴 뭐야? 라고 생각해서 안내판을 봤더니 「사자에 씨 발상지」라고 적혀 있다. 이 공간의 명칭은 이소노 광장! 사자에 씨 원작자인 하세가와 마치코 씨가, 1944년~1946년, 이 근처의 후쿠오카시(현재의 니시진 3초메)에 살고 있었고, 모모치의 해안을 산책하면서 소라, 가다랑어, 미역 등의 등장인물을 고안했다고 한다. 일요일 안방에서 항상 보는 사자에 씨가 이 지역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하다. 야프 섬의 돌화폐 시사이드 모모치 부근을 산책하다 보면, 조형물 등의 예술작품을 자주 발견합니다. 후쿠오카시 종합도서관의 앞에서 거대하고 둥근 돌덩어리를 발견! 미크로네시아연방 야프 섬의 돌 화폐로서 요카토피아(아시아태평양박람회)가 그리워지는 전시물입니다. 700년~800년 전부터 사용해 왔다고 생각되며, 놀라운 것은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돈입니다. 지름 2.9m, 무게 4톤, 어떻게 돈을 낼까? 데굴데굴 굴려서 가는 것일까? 모모치하마 우미피 해변 후쿠오카 타워의 옆을 빠져 나와서, 바로 옆의 모모치하마 우미피 해변까지 왔습니다. 해변에서 되돌아 보면, 야후 돔과 후쿠오카 타워가 보입니다. 정말로 후쿠오카의 발전을 상징하는 듯한 경치군요. 마리존의 오픈카페에서 차를 마시면, 마치 외국의 해변 휴양지에 온 것 같아요!

훌쩍 떠나는 시간여행  후쿠오카와 아시아의 교류는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고대부터 아시아와 교류해 왔습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그 옛 시대의 기억이 남는 장소를 우연히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 칼럼에서는 그런 장소를 소개.   후쿠오카의 거리를 산책하다가 발견하면 먼 옛날로 시간여행을 해 보십시오. 첫 번째 샤코쿠메이(謝国明)의 묘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망망대해를 누빈 무역상~ 가마쿠라시대는 일송무역이 왕성하게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하카다에는 고우슈(綱首)라고 불리는 상인들이 있었습니다. 고우슈란, 하카타의 토우진마치(唐人街)에 살며, 일송무역을 행하고 있던 송인을 지칭한다.하카다의 토우진마치는 하코자키궁(筥崎宮)의 주변에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말기 무렵부터 만들어져서, 어느새 다이토우가이(大唐街)라고 불릴 정도로 커져 있었습니다.이국풍의 건물이 즐비한 모습은, 매우 멋있었겠죠!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지 않습니까? 그런 고우슈 중의 1명이 샤코쿠메이.샤코쿠메이는 송에서 태어나, 일본에 귀화한 무역상인.일본여성과 결혼해서, 쿠시다신사(櫛田神社)근처에 살았다고 합니다.대한해협에 떠오른 오로노시마(小呂島)도 갖고 있어서, 그 섬을 무역의 기지로 삼고 있었습니다.하카다구에 1241년에 창건된 죠우텐지(承天寺)라는 오래된 사찰이 있습니다. 이 절을 창건한 사람은 송에서 귀국한 쇼우이치 코쿠시(聖一国師). 하카다 기온야마가사(하카다의 마츠리)는 쇼우이치 코쿠시가 그 무렵 유행했던 역병을 잠재우기 위해 제단에 올라타고 물을 뿌린 것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샤코쿠메이는 쇼우이치 코쿠시가 송에 유학하는 것을 후원하고, 죠우텐지의 건설도 도왔다고 합니다.샤코쿠메이는 평범한 무역상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돕기도 하고, 조국의 절이 불에 탔을 때도 돕는 등, 정말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었던 것 같고, 그런 부분에 매력을 느낍니다. 옛날에 무역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누빈 샤코쿠메이. 지금, 그의 흔적은 후쿠오카의 마을에 남아 있을까요?실은 샤코쿠메이의 묘라고 여겨지는 장소가 하카다역 근처에 있습니다.  빌딩에 둘러싸인 작은 모퉁이. 샤코쿠메이는 이 장소에 묻혔습니다. 어느새 그 묘는 한 그루의 큰 녹나무에 덮여서, 지금은 그루터기만 남아 있습니다. 「큰 녹나무 님」이라는 애칭으로, 현재도 친숙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참고문헌/『하카다의 호상』 저자 다케노 요코 아시쇼보우 1980년 발행

아지비 전람회 르포 vol1 아지비 탈것 대도감영차!~ 아시아의 축제 탐방 아직 더운 여름! 나카스 가와바타 지하철역 위의 하카타리바레인7층, 8층에 있는 냉방이 잘 된(웃음) 도시의 오아시스,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에서 예술 감상은 어때요? 아시아 전문의 미술관에서, 아시아의 현대미술작품을 수집, 전시하는 것은 세계에서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역시, 아시아 각국과 연결고리가 강한 도시・후쿠오카이기 때문이지요. 이번에는, 현재 열리고 있는 모음전「아지비 탈것 대도감」, 「영차!~아시아의 축제 탐방~」을 소개합니다. 아지비 탈것 대도감 2010년7월1일(목)~ 2010년9월28일(화) 장소 아시아갤러리 B 화려한 방글라데시의리키샤가 마중 우선, 전시장 가운데에 전시된,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화려한 탈것, 방글라데시의「리키샤」. 어원은 일본어이고, 일본의 인력거가 전해져서「리키샤」라고 발음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인에게는, 향수에 젖게 하는 탈것이지만, 방글라데시에서는 아직 거리를 달리고 있습니다. 싼 요금으로 이동하는 서민의 발입니다. 보시는 대로, 화려한 색상이 특징, 좋아하는 영화스타를 그려 넣기도 하는 등, 화려함을 경쟁합니다. 이 이상한 탈것에, 실제로 타고 사진촬영을 해도 됩니다. 단숨에 아시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사이드 아하메드 호세인(그림)아리 메칼 (차체제작)[방글라데시]리키샤 1994 흥밋거리CHECK전시된 리키샤 뒤의 그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후쿠오카 시민에게는 친숙한 오호리 공원과 후쿠오카 타워가 그려져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예술가, 모하메드 씨가 후쿠오카 체재 중에 제작했다고 합니다. 신에게조차탈것은 있습니다 탈것이라 한다고 차, 버스, 비행기뿐만이 아닙니다.단숨에 이국적인 기분이 드느 것이 인도의 신(神)시리즈. 인도의 신들도, 각기 전용의 동물과 식물을 탈것으로 삼고 있습니다. 동물과 식물을 능숙하게 타므로 해서, 자연을 지배하면서도, 자연과 공존해 온 것이라고 합니다. 칼티케야 신은 공작을 타고 있습니다. 잘 보면, 공작은 뱀을 타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알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작가 미상(발마 프린트)[인도]칼티케야20세기 전반 파키스탄의젊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붕~하고 굉음이 들려올 것 같은, 오토바이를 상쾌하게 잘 타는 멋진 여성들. 30년 이상 전의 파키스탄의 영화 포스터입니다. 영화제작이 왕성한 나라 파키스탄, 포스터는 유력한 광고수단이며,직접 그린 것부터 사진까지 다양한 것이 제작되어 왔습니다. 남성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원기 왕성한 젊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더니・・・.  이슬람교도・ 파키스탄의 실정에 대한 반증이며, 영화의 속에서밖에 존재하지 않는 여성들이라고 함. 포스터에 숨어 있는, 그 나라의 시대배경과 문제 등에도 주목해서 보면, 더욱 이해가 깊어진다. 아쿠탈[파키스탄]요즘 여성1977년 흥밋거리CHECK 전시장의 한편에서 색칠놀이 발견! 어린이가색칠놀이를 하는 동안, 엄마와 아빠는 천천히 작품감상 할 수 있지요. 잘 보면, 미술관에 소장 중인 예술가의 작품이고, 한 장, 한 장이 매우 아시안 틱하다. 집에 걸어두면 멋진 실내장식으로 변신.

영차!~아시아의 축제탐방 2010년7월8일(목)~ 2010년10월5일(화)장소 아시아갤러리 A 여름이다! 축제다! 아시아의 축제 대집합 계속해서 아시아의 축제에 관한 작품을 모은 기획전입니다.후쿠오카에도「하카다 돈타쿠」, 「하카다 기온 야마가사」 등의 축제가 있습니다만, 물론 아시아 각국에 많은 축제가 있어 요. 어느 축제의 그림을 봐도, 사람이 넘쳐나고,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고, 즐거워 보이는 것이 인상적. 떠들썩한 목소리가  당장에라도 들려올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태국의 대표적인 축제「이벤 축제」를 그린 것입니다. 열기구와 같이 일제히 하늘로 띄워 보냅니다. 우와 정말 환상적이다, 한 번 방문해서 실제로 보고 싶어졌습니다. 폰 차이・자이마[태국]이펜(축제)2007년 일본의 축제와 닮았습니까? 즐거운 분위기가 반전돼서, 무서운 괴물이 거리에서 설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오고오고」라는 정월 대보름의 액때우기 축제를 그린 것입니다. 지금도 「뉴피」라고 불리는 발리 섬의 정월의 전 날에는, 도깨비 라든지 요괴 등의 큰 애드벌룬같은 오고오고가 거리를 행진합니다. 폭죽과 가믈란(특수한 타악기를 중심으로 한 인도네시아 고유의 음악) 등으로 큰 소리를 내고, 그것을 사람들이 매고 거리를  행렬을 지어 걷는다・・・후쿠오카의 야마가사와도 닮았네요. 흥밋거리CHECK 미술관이라고, 딱딱한 감상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을 벗고, 타타미의 위에서잠시 쉬는 것도 좋다. 앉아서 천천히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작품이 또 다르게보일지도 모릅니다.이다・바그스・푸토・타만[인도네시아]정월 대보름의 액때우기1985년 누가 가장 미인입니까? 라오스의 축제에서 미인 선발대회를 그린 작품. 작가는 2001년, 미술관의 기획사업으로, 3개월간 후쿠오카에 체재하는 동안, 후쿠오카와 라오스의 생활 속에 숨 쉬는 전통을 주제로 회화를 제작, 그 중의 한 작품이라고 한다. 화려한 라오스의 민족의상이, 전통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요. 모두 자신만만한 얼굴로 보입니다. 누가 가장 예쁠까? 흥밋거리 CHECK 여러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예술 욕에 빠져버린 당신! 전시장 부근에는 종이와 색연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든지, 상상의 축제 등, 자유롭게 그려봐요. 어린이는 물론이고, 좀처럼 그림을 그릴 기회가 없는 어른도, 즐기실 수 있습니다. 작품은 전시실 내에 게시한다고합니다 캄 탄 산리안캄[라오스] 미스 라오스 선발대회2001년 어떻습니까? 여름방학 기간 중이라서 그런지, 모두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알기 쉬운 작품설명도 있으므로 가족나들이 겸, 감상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미술관이라고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됩니다. 자유롭게보고, 느끼고, 그림도 그리고・・・예술혼을 자극하는 2개의 기획전을 소개했습니다. 후쿠오카아시아 미술관 [ 홈페이지에접속 ]입장료:무료 관람료:아시아갤러리 개인/일반 200엔,고・대학생 150엔,중학생 이하 무료 상세지도 보기

아시안 보물 상자 아시아 맛 기행 vol.1 호떡 나도 모르게맜있어요♪ 한국포장마차의 대표적 간식  한국을 방문해서 먹은 것 중에서 「일본에도 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생각한 간식, 그것은 바로 호떡! 모양새는 뭐라고 하면 좋을까,밀가루를 반죽해서 납작하게 만든 우메가에 모치(매화 가지 떡) 같 기도 하고, 안에 있는 흑설탕이 녹은 꿀이 걸쭉하게 비집고 나와서, 아 뜨거워!  하면서 먹는다. 겨울철 포장마차의 대표적인 즉석 음식.시나몬(녹나무 속의 나무껍질을 벗겨서 건조한 향신료.) 맛, 땅콩  맛, 잣 등의 토핑도 있고, 가게에 따라서 맛도 개성도 여러 가지, 그중에는 줄을 설 정도로 인기 있는 포장마차도 있어서 비교해서 먹어볼 수도 있습니다. 그 호떡이 후쿠오카시 니시나카스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들뜬 마음으로 달려갔다. 호떡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니까 열기가 물씬 나는 가게라고 상상했는데, 도착한 곳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나 갤러리 같은 멋스러운 가게. 건물 외벽에는 한복을입은 여성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겨우 한국요리점이란 것을 알았다(이 그림의 모델은 가게 사장님. 쏙 빼닮았으니 만나게 되면 말을 걸어야지.)일러스트의 귀여움에 우선, 감동했다. 무언가 재미있을 것 같은 가게다. 기대된다…. 두근두근. 가게의 밖에서도, 창문을 통해 호떡을 굽는 모습이 보인다.어! 이쪽의 호떡은 녹색이네, 그래, 녹차의 잎이 들어간 녹차호떡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건강 붐(웰빙 붐이라고 함).그 여파로 등장한 녹차 호떡이 한국에서도 인기. 한국의 그 맛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서, 현지로부터 재료를 받아 만들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포장마차에서 먹을 때와 같이, 반으로 접어서 종이컵에 넣어준다. 금방 구워낸 호떡. 부풀어 올라 부드럽고 쫀득쫀득한 맛, 살짝 녹차의 쓴맛이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맛있어서 꿀꺽 삼키고 싶겠지만, 안에서 녹은 흑설탕의 꿀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주의. 해바라기 씨와 참깨가 좋은 악센트. 우와~한국에서 먹은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차라리 이쪽이 더 맛있다. 맛있어요~! 녹차 호떡1개 300엔(2개 500엔). 한국의 포장마차에서 먹으면 1개 1,000원 (약, 100엔) 정도지만, 후쿠오카에서 먹을 수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1층에는 호떡 이외에도, 한국의 김밥, 부침개, 잡채, 김치(전 메뉴, 각 500엔) 등을 포장해서 사 갈 수 있는 코너. 부침개의 양념, 고추장, 차 등 한국의 음식재료도 판매. 그중에서도 무농약 재배된 고품질의 참깨를 가게 안에서 짜서 신선할 때 바로 병에 넣은 참기름은, 조금만 사용해도 요리의 맛이 좋아진다고, 요리인들로부터 주문이 많은 품목이라고 한다. 계단을 올라가서 1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2층의 공간은, 맞춤형 코스 3,000엔~(4명이상, 예약 필요), 그 밖에도 1품 요리, 술을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 들여온 테이블 등의 가구가 귀엽고, 한국의 전통찻집을 연상케한다. 적은 인원의 모임에는 딱 좋다. 종업원들 간에는 한국말이 오가고, 모두 즐겁게 웃는 얼굴로 일하는 따뜻한 가정과 같은 분위기도 좋다. 한국이 그리워지면 언제든지  갈수 있다. 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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